2017년 3월 26일 일요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

오전 일정을 마치고 바로 6호선 효창공원앞역 1번출구로 향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년 추모식 및 생가복원 선언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먼저 백범김구기념관에 들렀는데, 전시관 로비 중앙의 백범상은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안의사상과 비슷한 포맷의 하얀색 좌상이다.


백범이 자비로운 구름이 된 망모를 그리며 쓴 북망자운(北望慈雲) 친필 휘호가 들어온다. 곽낙원 여사와 김구, 조성녀(마리아) 여사와 안중근(토마스)…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드님이다.



효창공원 내 묘역은 김구 묘역, 임정요인 묘역(조성환·이동녕·차이석), 삼의사 묘역(안중근·이봉창·윤봉길·백정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열사(義烈士)는 안중근 의사를 제외한 일곱 분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추모식에서는 몇몇 배우와 다수의 학생들이 안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기념하는 포퍼먼스를 재현하기도 했다. 비록 함세웅 신부님이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긴 하지만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토마스를 위해 가톨릭교회의 주교급 고위성직자가 참석하여 한 마디쯤 메세지를 전하는 교회 차원에서의 헌사를 바랬는데… 역시나 요원한 일인가 보다.


그나마 일요일이어서 등교 부담이 없는 학생층이 많이 참가하기는 했지만 글쎄... 봉사점수가 걸려있지 않다면 휴일 늦잠을 반납하고 기꺼이 참석했을지 의문이고,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였다. 안의사의 우레 같은 위명(威名)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태극기 두른 수구꼴통들이 전연 보이지 않아 좋았다.


명례방협동조합의 박한창·윤영전 선생님이 함께 하셨고, 김익완 사부님과 삼의사 묘역 앞에서 한컷 찍었다. 그 어느 때보다 동아시아의 헤게모니 다툼이 치열한 이때 안의사의 동양평화론을 계승하고 되새겨봄직 하다. 의사 가신 지 어언 107년… 유해조차 찾지를 못하고 가묘라니… 참으로 부끄러운 후손이다.

2017년 3월 19일 일요일

의정부 한마음수련장 걸어가는 길

어제 오늘 명례방협동조합 임원연수가 있어서 의정부 한마음청소년수련원에 다녀왔다. 90년대 초반 중고등부교사연합회 연수 이후 처음이니 20여 년 만의 방문이다.
의정부역 5-2번출구 건너편 의정부역 동부광장 정류소(08-121)에서 5번 버스를 탔다. 대략 25분 정도 걸려 한마음수련장입구 정류소(39393)에서 하차했다. 중간에 경민대학을 경유했는데, 학교 정문이 ‘독립문’이어서 놀라웠다.


웹서핑을 해봐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마음수련장으로 찾아가는 지도나 약도는 딱히 검색할 수 없었기에 후행자를 위한 기록 차원에서 남겨둔다.


한마음수련장입구 정류소에서 5번 버스를 하차하면 오일뱅크 주유소가 보이는데, 뒤로 돌아 우측 길로 들어가야 한다. 길 왼편으로 호명농장이 보인다.


사거리 왼쪽으로 평화옥순대국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그물이 쳐진 양주산성 야구장이 보인다. 우측으로 돌면 BNS모터스가 나오는데 여기서 도로를 건너면 왼편에 어둔동여성경로당이 있다.


수련원 이정표 옆 망둥어매운탕과 약수산장 길로 진입해 올라가면 경작지 사이사이로 촌락이 보인다.


우측에는 하림농장이 있고 맞은편 좌측에는 들꽃같은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글쎄… 들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마침내 한마음수련원 입구가 보인다. 진입로 양편에 사찰로 치자면 일주문 역할을 하는 큰 돌이 기립해 있다. 버스정류소에서 입구까지 빠른 걸음으로 대략 12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중간중간에 팻말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어둔저수지 남쪽의 철구조물을 통해 가면 우리가 묵은 갈릴래아 방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저수지 북쪽에는 호수1동, 호수2동 건물이 있다.


호수동 쪽에서 바라본 갈릴리동(갈릴래아실)의 모습이다. 호숫가 나무숲에 위치하고 있어 소규모  MT나 워크샵에 적당하다. 14명 기준 요금은 20만원이다. 자체 취사를 할 수 있도록 주방이 붙어있는 거실과, 2층침대가 놓여 있는 방 2개, 화장실 2개, 긴 테이블이 있는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명례방협동조합 정관 윤독을 시작으로 2017년의 운영계획을 함께 고민하며 토론하고 점검하였다. 베네딕도 이사장님이 야심차게 공수해오신 조니워커 블루라벨과 봄향기 물씬 나는 채소무침에 담백한 수육으로 우리의 식탁은 풍성했다. 늦은 시간까지 비오 감사님의 단소 반주에 맞추어 어린시절 동요를 떼창하며 어둔호반의 까만밤을 보냈다. 분위기 탄 세라피나 이사님이 “오 사랑하는 주님 날 도와주소서” 교사의 기도를 부르니, 글라라 이사님이 “송이송이 무궁화 우리 소년들, 피어라 이 강산에 겨레 위하여” 스카우트 단가로 응수하고, “어머니시여 모후시여 나는 오로지 당신것”이라며 모니카 실장님이 레지오마리애 단가로 화답하시더군^^


초입동 앞에 설치돼 있는 한마음청소년수련원 안내도이다. 관광버스 타고 본관이나 피정동으로 휘익 지나가면 보기 힘들겠다 싶다.


의정부 한마음청소년수련원
주소: 양주시 버들로 147-142(어둔동 489) 40만평 부지
전화: 031-840-0018
http://www.hanmaum84.com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모든 촛불이 찬란했다

3월 11일 토요일을 끝으로 불의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스무 차례의 촛불이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지난 가을부터 수백 만 명이 한목소리로 부패하고 무능하며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저항하면서도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움직였다는 찬사는 허튼 소리가 아니다.





한편, 서울광장에 설치된 탄기국 텐트는 박ㄹ혜를 향한 무한숭배의 샤머니즘적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누가 배타고 놀러 가라 그랬나?”, “내 딸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어도 일본을 용서했을 것”, “연설문 좀 들여다 본 것이 뭐 그리 잘못인가?”라는 박사모패들의 악다구니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서구가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민주주의를 수십 년 만에 뚝딱 만들어놓고 완성한 것처럼 착각한 설레발을 반성해야 한다.


트럼프저항운동(TRM)이 페이스북에 게재한 우리를 위한 본보기(Bravo to the South Korean people! Thanks for setting an example for us) 웹페이지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훼손됐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부러움을 읽을 수 있다. 그들(한국)이 할 수 있다면 우리(미국)도 할 수 있다며(SEVERAL MONTHS OF THIS LED TO THE IMPEACHMENT AND REMOVAL OF SOUTH KOREA'S PRESIDENT OVER CORRUPTION. IF THEY CAN DO IT, SO CAN WE.) 결의를 다지고 있다.
reference: https://www.facebook.com/TrumpResistanceMovement/photos/a.219760001768276.1073741828.219730435104566/261544620923147/?type=3&theater


마침내 미치광이 드라이버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렸다. 덴버대 에리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 교수의 3.5% 법칙이 실현되는 걸 목도하는 것은 진정 아름다운 전율이었다. 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의리사탕

발렌타인데이(Saint Valentine’s Day)는 나름대로 역사와 유래가 있다. 3세기 후반 로마의 클로디우스(Clodius) 황제가 징집을 위해 젊은이들의 결혼을 금지했을 때, 인테람나의 주교였던 발렌티노(Valentine)가 몰래 찾아오는 선남선녀들의 혼인성사를 집전해 주었다. 진노한 황제는 발렌티노를 잡아들였고, 그의 인품에 감명 받아 개종을 시켜 살려주려고 하였으나 발렌티노는 가톨릭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돌팔매를 당하고 순교하였다는 전승이 있다. 초콜릿을 주고받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1936년에 일본 고베의 모로조프 제과에서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광고하였으며, 1960년 모리나가 제과가 마케팅으로 성공하였다.
반면 발렌타인데이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일본 전국사탕과자공업협동조합(全國飴菓子工業協同組合)이 매상을 올리고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1980년에 시작한 기념일이 화이트데이(white day)이다.


어제는 이른바 의리사탕 성격으로 아이들에게 롤리팝아이스 캔디 4종을 나눠주었다. 롯데제과에서 생산한 죠스바, 스크류바, 수박바, 더블비얀코 아이스크림을 축소한 사이즈에 동일한 맛이 나는 사탕을 얻고 좋아하는 녀석들을 보니 더불어 흐뭇해진다. 의리 초콜릿이니 뭐니 하는 스트레스도 다 날아간다. 이미 행복산업에 익숙해진지 오래이다.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압구정동, 청담동 역사문화트레킹

치맥과 함께 불같은 탄금을 보내고 난 어제 아침, 속은 쓰렸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압구정역으로 향했다. 명례방협동조합의 일곱 번째 야행을 겸하였기에 참가 인원이 열네 명으로 늘었다. 혜금 조합원님이 정성껏 부쳐온 김치전과 따뜻한 커피로 속을 달래면서 스물여섯 번째 역사문화트레킹을 시작했다. 멕시코의 한 시민단체가 만든 부패 투어(Corruptour)를 벤치마킹하여 최순실 관련 부패 명소를 돌아보기 위함이니 뷔페 투어(Buffet tour)가 아니다.
압구정역 1번출구를 뒤로 돌아 압구정로29길로 들어서면 왼편에 하얀색 교회건물이 보인다. 한때 최순실이 출석했던 것으로 보도된 예장 압구정교회는 여타의 강남 대형 교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로 보인다. 1970년 창립되어 이듬해 합동에서 고신총회로 소속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배에 참석하면서 최순실은 정재계의 주요 인사들과 안면을 트려는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최순실의 기도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관련기사1 : http://www.sedaily.com/NewsView/1L3VMM7682
관련기사2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6916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주로 노동자를 위한 국민주택으로 건축된 서구의 아파트와 달리 한국의 아파트는 독재정권과 재벌 간 정경유착의 압축적 표상이라고 썼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효시는 1961년 마포구 도화동에 건설된 마포아파트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강 조망권이 좋은 영등포와 강남 일대에 성냥갑 형태의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특히 강남 한강변의 아파트는 전통적인 풍수와는 반대로 배수임산(背水臨山)의 지형에 건축되었다. 옛 한양이 청계천을 축으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뉜 것처럼, 강남지역도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테북과 테남으로 구분된다. 압구정동은 테북의 대표 동네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그 처가 식구들이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몰려살고 있다는 것은 여러 차례 보도된 내용인데, 압구정교회 건너편에 자리한 6차 80동 가운데층 60평대의 시세는 3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국회청문회나 특검조사에서 우병우는 최순실을 모른다고 일관했고, 현재까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다.
관련기사3 : http://superich.heraldcorp.com/superich/view.php?ud=20161110000003&sec=01-74-02&jeh=0&pos=
관련기사4 : http://www.focus.kr/view.php?key=2016111000175508056

71동 앞 SC제일은행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20동과 201동 사이의 논현로190길에 위치한 여성전용 사우나 앞까지 가봤다. 최순실은 소설이라며 부인하고 있지만 이른바 팔선녀로 불리는 유력 여성인사들과의 사교모임을 막후에서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팔선녀의 면면이 궁금하다. 아마도 최순실이 양소유 역할이었나 보다.
관련기사5 :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27/2016102790187.html
관련기사6 : http://www.kgdm.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237


압구정 현대아파트 1단지 11동 뒷편에는 수양대군의 장자방 압구 한명회(1415~1487)가 건립한 압구정(狎鷗亭)이 있었다고 한다. 절경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파주 임진강에는 반구정(伴鷗亭)이 있다. 세종 대의 명재상 방촌 황희(1363~1452)가 영의정을 사임하고 87세에 내려가 죽을 때까지 3년간 갈매기를 벗삼아 노년을 보낸 곳이다. 똑같은 갈매기(鷗)인데 황희는 짝(伴)을 삼아 반겼고, 한명회는 길들여(狎) 가깝게 지냈다는 차이점이 있다. 옥수역은 강북, 압구정역은 동호대교 건너편 남쪽 강남이다. 참고로 7호선에는 서거정(1420~1488)과 관련된 사가정(四佳亭)역이 있다.

논현로190길을 따라 51동 앞에서 우측으로 돌면 압구정로 33길이다. 압구정초등학교를 지나고 압구정파출소 앞에서 좌회전하여 압구정고등학교, 압구정중학교까지 걸은 후 대각선 방향으로 이동했다. 성수대교남단교차로에서 횡단보도 2개를 건너는 지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유라는 이화여대 1학년이던 2015년 평창 땅을 담보로 KEB하나은행(당시 외환은행) 압구정중앙지점에서 외국거주자 신분으로 보증신용장을 발급받아 KEB하나은행 독일법인에서 38만5000유로(약 4억8000만원)를 0.8%의 저금리로 대출받았다. 하나은행이 대출규정을 위반하는 엉터리 심사로 정유라의 돈 세탁을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당시 독일법인장이었던 이상화는 글로벌영업2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유재경을 미얀마 대사로 최순실에게 추천했다. 넘사벽인 대출문턱으로 애가 타는 서민들만 곤욕이다.
관련기사7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701031603001&code=920100
관련기사8 :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b/159945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사이의 언주로174길은 이른바 최순실 나와바리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서 정윤회와 십상시의 회합 장소로 지목됐던 중식당이 JS가든 압구정점이다.
관련기사9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502699

1985년 신사동의 한 건물을 임차해 종합학원을 운영하다가 32살이던 1988년경 학원 앞 부지 107평(353㎡)을 취득하여 초이유치원을 열었다는 게 최순실의 주장이다. ‘최’를 해자하면 ‘초이’가 된다. 몬테소리 교육으로 유명했다던 유치원 건물은 현재 동부저축은행 압구정지점이다. 2008년 초 동부 측에 85억원에 판 것으로 보도되었다.
관련기사10 : http://news.joins.com/article/21128511
관련기사11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039050&code=61121111&cp=du


최순실은 1988년에 신사동 토지를 매입한 후 2003년에 미승빌딩을 신축했다. 지하 2층, 지상 7층의 미승빌딩은 6~7층이 복층형 펜트하우스로 되어있고, 월 임대수익 7200만원이라고 한다. 시세는 200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6년 4월 250억원에 급매로 내놨지만, 팔리지 않아 현재는 220억 정도로 내린 상황이라고 한다.
관련기사12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10718335021875
관련기사13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12/25/20161225001562.html?OutUrl=daum


스타벅스를 끼고 왼편으로 돌아나가면 압구정로이다. 신사동의 KB국민은행 압구정동지점 건물에는 최순실의 단골 마사지센터로 알려진 숍이 있다. 최순실의 소개로 K스포츠재단의 2대 이사장을 지낸 정동춘 씨가 운영하던 CRC운동기능회복센터가 그곳이다. 정동춘은 국회청문회에서 자기는 마사지사 출신이 아니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반탄집회에 나와서도 억울함을 드러낸 바 있다. K스포츠재단은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 원을 출연받고 신청 하루 만에 초고속으로 허가증을 발급받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관련기사14 : http://www.seoultopnews.kr/?r=home&m=news&mod=view&uid=7095
관련기사15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20713140808974

압구정로를 건너 압구정로데오역 2번출구와 갤러리아백화점 이스트점을 지나 왼편 압구정로61길을 걸어 올라가면 청담고등학교이다. 페이스북에 “돈도 실력이야, 돈 없는 네 부모를 탓해”라고 써서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의 공분을 야기한 네가지 정유라. 2014년 당시 3학년 소정출석일수 129일 중 단 17일만 출석한 정유라에게 온갖 특혜를 주어 졸업시킨 청담고와 일부 교직원들에 대한 서울교육청의 징계는 '경고' 처분에 그치는 솜방망이 수준으로 비난받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가장 엄밀하고 공정하게 검토된 소득결정요인은 교육이었다. 교육은 노동시장, 결혼시장, 신용시장 등에서 개인의 이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방패이다. 1990년에 개교한 청담고등학교의 교훈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상(理想)과 창조(創造)이다. 21세기의 주역이 될 인재육성이 교육목표란다. 사교육을 무슨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지들은 썩을대로 썩어빠진 이 나라 공교육의 민낯을 여지없이 보여준 교육농단의 현장에 어이가 없음이다.
관련기사16 :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437762
관련기사17 :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120000080


청담고에서 내려와 압구정로를 건너서 SK갤러리아주유소 옆의 THE TRINITY PLACE와 GIVENCHY 사이의 압구정로60길로 들어서면 토니앤가이 청담본점이다. 박ㄹ혜의 올림머리를 전담했다는 정송주 원장의 고급미용실이다. 정 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올림머리를 손질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박근혜 올림머리 체험기’라는 기사를 보면 9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3월 10일 탄핵선고 당시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핑크 헤어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관련기사18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424235
관련기사19 : http://hooc.heraldcorp.com/view.php?ud=20161209000758


2016년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국정개입 보도가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되어 일파만파 번져나가 개헌꼼수가 소멸되고 거대한 촛불로 타오르게 되면서 결국 탄핵으로 귀결났다. 더블루K 사무실에는 첫번째 태블릿PC가 발견된 책상이 아직 놓여 있었다. 고영태는 최순실이 더블루K 사무실에 있다가 청와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낙원상가 앞에 이영선 행정관이 대기하고 있다가 최순실을 데리고 들어갔다고 증언한 바 있다. K스포츠재단과 연계된 더블루K는 최순실이 한국과 독일에 세운 회사로, K스포츠재단 자금을 독일로 빼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아시안게임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고영태가 이사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20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6120821355563453&outlink=1


부원빌딩에서 도산대로를 건너서 박ㄹ혜를 위해 최순실이 대리처방을 받았던 병원으로 알려진 차움의원으로 향했다. 한때 김기춘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본인은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차병원 제대혈은행은 불법으로 제대혈을 공급한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관련기사21 : http://www.etnews.com/20161227000401
관련기사22 : http://moneys.mt.co.kr/news/mwView.php?no=2016112012588036557&outlink=1
관련기사23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79734

차움의원 건물의 주상복합오피스텔 '피엔폴루스' 1001호는 최순실이 독일로 가기 전까지 거주하던 최고급 레지던스이다. 라틴어로 '천국'을 뜻하며 호당 매매가가 20억~3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장시호가 특검에 제출한 2번째 태블릿PC 때문에 결국 이재용이 구속되기에 이른다.
관련기사24 :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307000047
관련기사25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117003007&wlog_tag3=daum#csidx7d2bae709ab35d6bab12544b57dcac9


약 2시간에 걸쳐 최순실이 다녔던 교회와 사우나하던 쑥탕과 거래하던 은행과 운영하던 유치원과 기거했던 빌딩집과 오피스텔, 우병우의 아파트, 정윤회가 밥먹던 음식점, 정유라가 다니던 학교, 올림머리 미용실, 태블릿PC가 발견됐던 사무실 등 최순실과 관련된 국정농단의 현장을 답사하며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제시한 악의 일상성과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을 성찰해 보았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탄핵선고가 있던 3월 10일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순국 79주기이기도 했다. 중국에까지 소문났던 압구정의 풍광과 맑은 물이 깊었던 청담동 땅을 온통 헤집어놓은 최순실을 아는 것은 곧 박ㄹ혜를 사정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지인’ 최순실과 한몸으로 대통령 박ㄹ혜가 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헌재의 파면사유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26 : http://www.hankookilbo.com/v/681bdf95ccce469b9462cfbb24615a03
관련기사27 :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31&newsid=01400566615862992&DCD=A403&OutLnkChk=Y
관련기사28 : http://www.viewsnnews.com/article?q=142694
관련기사29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10/0200000000AKR20170310071100004.HTML?input=1179m

2017년 3월 4일 토요일

국사당, 선바위 역사문화트레킹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스물 다섯 번째 트레킹을 출발했다. 중종 31년(1536)에 명 사신을 맞기 위해서 모화관 남쪽에 영조문(迎詔門)을 세웠는데, 영조(迎詔)가 한군데 치우친 듯하다고 하여 3년 뒤에 영은문(迎恩門)으로 고쳤다고 한다. 영은문은 1895년 2월에 김홍집 내각에 의해 사대주의의 상징물이라 하여 현재의 장주형 초석만 남기고 철거되었는데, 그 자리에 건립된 것이 독립문이다. 독립문의 편액이 친일 매국노의 상징인 이완용의 글씨라는 것은 다소 뜻밖일 수 있는데, 새로운 수구파의 주장이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이었음을 복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화루는 태종 7년(1407)에 명나라 사신을 위한 영빈관으로 건립되어 세종 11년(1429)에 모화관(慕華館)으로 확장·개축되었다. 원래는 현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350m 떨어진 영천동에 있었다고 한다. 모화관을 대신하여 건립됐다는 독립관의 원기둥에는 흰색 페이트칠 대신에 흰색 천이 거의 절반 높이까지 둘러져 있다.


시텐노가즈마(四天王數馬)가 설계한 붉은색 파놉티콘은 경성감옥(1908.10.21)으로 개소한 이래 서대문감옥(1912.9.3), 서대문형무소(1923.5.5)로 개칭되었다. 1936년 전국의 형무소는 17개소(소년형무소 3개 포함)이며 형무지소는 11개소에 달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형무소(1945.11.21), 서울교도소(1961.12.23), 서울구치소(1967.7.7), 서대문형무소역사관(1998.11.5)으로 변모하였다. 현재 사적 제324호(1988)로 지정되어 있다.


이강년, 허위, 이인영, 이은찬 등의 의병장과 이재명, 강우규, 채경옥, 송학선 의사 등이 이곳에 수감 후 순국하셨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진보당 사건(1958), 민족일보 사건(1961), 동백림 사건(1967), 인혁당재건위 사건(1975) 등의 피의자를 수감하여 사형시킨 반민주의 상징적인 곳이다.


12옥사 외벽에 내걸린 대형 태극기는 언제나 뭉클하다. 저급한 박사모야, 사이비 한기총아, 태극기란 이런 것이다. 태극기는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성계가 경복궁을 수호하는 호국도량으로 창건한 인왕사(仁旺寺)는 특이하게도 조계종 인왕사가 아니라 ‘인왕종 인왕사’로 되어 있다.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던 국사당은 1925년 일제가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지금의 인왕산 기슭 선바위 아래로 이전되었다. 명칭도 남산(목멱산) 시절에는 제사 사(祀) 자를 써서 國祀堂이었는데, 인왕산으로 오면서 스승 사(師) 자로 바뀌어 國師堂으로 되었다고 한다. 인왕산국사당과 국사당 안의 무신도는 각각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와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禪) 자를 쓴다는 7m 높이의 선바위는 그 기이한 생김과 특유의 기운으로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도성을 축조할 당시 무학대사의 인왕주산론을 누르고 정도전의 북악주산론이 채택되면서 선바위는 한양도성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4호선 남태령 선바위역 인근에도 선바위가 있다.



높지 않은 산이라 해도 깔딱고개는 있기 마련… 오른편에 치마바위를 둘러두고 멀리 보현봉을 바라보면서 인왕산 정상에 도착… 애개, 338m 올라오면서 헥헥거리는 꼬락서니란… 좀 쉬엄쉬엄 달려야 할 때인데, 이눔의 사회가 자꾸만 술을 권한다.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액션

오늘 스물 네 번째 역사문화트레킹은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아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곳에서 정대협이 주관하는 제1272차 정기 수요시위에 동참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여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진상규명 없는 위안부 합의는 무효임을 천명했다.
12시경 평화나비 학생들의 ‘바위처럼’ 노래와 율동으로 집회가 시작되었다. 앞자리에 착석하신 네 분 할머님들 중 김복동·이용수 할머님이 고령임에도 단상에 오르셔서 일본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고 야비한 박ㄹ혜 정권의 부당함을 소리 높여 지적해 주셔서 모두의 박수와 지지를 받았다. 평화나비 학생들의 ‘윤병세 해임장’ 액션에도 기꺼운 마음으로 서명했다.



일본대사관 쪽은 중학동이고 소녀상은 도로(평화로) 건너편의 수송동에 있다. 연합뉴스빌딩 뒷길로 해서 수송공원으로 향했다. 소규모 공원이지만 조국의 독립과 근대 교육에 대한 많은 유적이 있는 곳이다. 숙명학교 옛터, 중동학교 옛터, 경희대학교의 전신인 신흥대학 터 표지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베델의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표지석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독립선언서 2만 1천 매를 인쇄하고, 조선독립신문 제1호를 찍어낸 보성사 터와 보성사 사장 옥파 이종일 선생의 동상도 돌아봤다. 담장에 둘러싸인 목은선생영당(牧隱先生影幀)은 아쉽게도 출입이 제한되어 안쪽 모습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색(1328~1396)의 영당은 부여, 서천, 연천, 예산, 전주 등 전국적으로 꽤 많은 편이다.
율곡로4길을 건너 조계사와 우정총국을 둘러보고 우정국로를 횡단하여 이런저런 눈요기를 하며 인사동 쌈지길을 걸었다.


4시에는 다시 소녀상 쪽으로 이동하여 천주교 전국행동이 주관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미사>에 참례했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와 빈민사목위원회 신부님들이 집전하는 우중 미사에는 많은 교우들이 함께 하여 ‘재의 수요일’을 묵상하면서 이마에 재를 받고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동행의 의지를 다짐하였다. 신비하게도 올해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이자 삼일절인 오늘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에 예수부활대축일을 맞이하는 나눔과 희망의 시기가 될 듯하다.
윤병세 왜교부(倭交部)의 정의롭지 못한 12·28 합의와 소녀상 철거 움직임 망동을 성토하며, 강은희 여가부(餘暇部)의 위안부 기록물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지원 중단을 강력히 규탄한다. 식민지 조선의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아시아·태평양 곳곳에 끌려갔고, 버려졌으며, 그 일부가 우여곡절 끝에 생환한 지 어언 73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아픔을 기억하고 살아계신 할머님은 단 39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