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ㄹㄹ의 로마자 표기법 ll

로마자 표기법은 외국인이 국어의 고유명사를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표기 원칙이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는 국어의 표준 발음법에 따라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ㄹ’은 모음 앞에서는 ‘r’로,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l’로 적는다. 단, ‘ㄹㄹ’은 ‘ll’로 적는다.
구체적인 예는 아래와 같다.

울릉도 Ulleungdo
헌릉(獻陵) Heolleung ⇒ 제3대 태종(1367~1422)과 원비 원경왕후(1365~1420) 민 씨의 쌍릉
인릉(仁陵) Illeung ⇒ 제23대 순조(1790~1834)와 순원왕후(1789~1857) 김 씨의 합장릉
선릉(宣陵) Seolleung ⇒ 제9대 성종(1457~1494)과 계비 정현왕후(1462~1530) 윤 씨의 동원이강릉
원릉(元陵) Wolleung ⇒ 제21대 영조(1694~1776)와 계비 정순왕후 김 씨(1745~1805)의 쌍릉

한라산 [할라산] Hallasan
대관령 [대괄령] Daegwallyeong
마천령 [마철령] Macheollyeong
한려수도(閑麗水道) Hallyeosudo
신륵사(神勒寺) [실륵싸] Silleuksa
곤리도(昆里島) [골리도] Gollido
불로봉 Bullobong
빌레못 Billemot ⇒ 단일동굴로서 세계최장(11,749m)
전라북도 Jeollabuk-do
신라 [실라] Silla
신림 [실림] Sillim
한림 Hallim
산림청(山林廳) sallimcheong
천룡(天龍) Cheollyong
천리포(千里脯) Cheollipo
물약 [물냑→물략] mullyak
알약 [알략] allyak

월내(月乃) [월래] Wollae ⇒ 여성머리장식용품
별내 [별래] Byeollae ⇒ 별비면 + 내동면
문래동(文來洞) [물래동] Mullaedong
물레방아 mullebanga
올레길 ollegil
진달래 jindallae
갈래 gallae
걸레 geolle
벌레 beolle
빨래판 ppallaepan
실례 sillye
판례((判例) [팔례] pallye
판로(販路) [팔로] pallo
결로(結露) gyeollo

고질라 Godzilla

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어리석다 말하더라

97년 전 오늘(11월 29일)은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 의사의 순국일이다. 어려서 한의학을 공부한 강우규는 55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성재(誠齋) 이동휘(1873~1935)를 만나면서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3·1 운동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입회하고, 1919년 9월 2일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였다. 이는 의사(醫師)가 의사(義士)로 변모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요사이 성조기 흔들어대면서 박ㄹ혜 무죄 따위나 지껄이며 태극기를 욕보이는 일그러진 노년들과는 비교불가 큰어른이시다. 누가 있어 감히 이 어른을 어리석다 말할(曰愚) 수 있을까.
당시 66세였던 강 의사는 의거실패 이후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이듬해인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셨다.


강 의사는 1962년 3월에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고 1967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하단 우측에 유해가 안장되었으며, 2011년에 문화역서울 284 앞에 동상 및 표지석이 세워졌다.
“내가 죽어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강우규 의사의 유언… 서울역광장을 오고가는 무심한 발길 속에 그분의 의거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2017년 11월 10일 금요일

건축왕 정세권의 디벨로핑

어제 저녁, 오랜만에 연건동 이화사거리행… 정림건축 지하2층 정림홀 착석.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진행하는 2017 공동건축학교 청강.
주제도서인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는 김경민 교수가 썼지만, 이날 강연엔 이지은 해리티지프로젝트 대표가 나섰다.


1920년대 일본인들의 청계천 북쪽 침투에 맞서 기농(基農) 정세권(1888~1965)은 최초의 종합 부동산회사인 건양사(建陽社)를 설립하고 대규모 필지를 사들여 잘게 쪼개 중소형 개량한옥을 건축하여 경제력이 약한 조선인들이 구입해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이로부터 익선동·가회동·삼청동·성북동·혜화동·창신동·왕십리 등지에 대단위 한옥단지가 조성되었다. 또한 민족운동에도 참여하여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에 재정 지원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건축왕 정세권이 유통왕 박흥식이나 광산왕 최창학과 차별되는 요인이 된다.
역사와 문화 분야에 치우쳐 인식하고 있던 기존 시각에 도시와 건축이라는 새로운 안목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 유익한 북토크였다.
정림건축이 진행하는 공동건축학교(共同建築學校)는 교수와 학생과 건축가와 연구자와 타 분야가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숙성해가는 교류의 장을 지향한다고 한다. 공동건축학교 웹사이트(gdarchischool.com)에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협동조합 마을대학종로 서촌 인문기행

28일 토요일 오후… 마을대학종로 협동조합에 가입한 후 첫 옥외행사로 서촌을 투어했다.
사극에서 신하들이 임금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전하, 종사를 돌보소서!” 할 때 나오는 종사는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준말로 왕실과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일제는 사직단 주변을 훼손하고 공원화하여 지금도 이곳을 사직공원으로 부르고 있다. 곡신의 신을 모시는 직단(稷壇)과 달리 토지의 신을 모시는 사단(社壇)에는 석주(石柱)라는 둥근 공모양의 돌이 황토에 박혀 있다.


천연기념물 제4호였던 통의동 백송을 지나 영추문 맞은편의 보안여관을 둘러봤다. 이곳은 1930년대의 문예동인지 <시인부락>의 창간장소로 알려진 문인과 화가들의 산실이다.


창성동 미로미로(迷路美路) 골목은 구들장과 기왓장으로 꾸며진 데코가 예쁘다. ‘세계정교 발상지’란 푯말도 보였는데, 세스팔다스 계옴마루(Thesparldoes Gyeohmmahroo)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일명 ‘하정효 가옥’으로 불리는 이곳 주택 담벼락은 노란색과 연두색을 섞어놓은 듯한 다소 그로테스크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쌍홍문 터는 임천조씨 조원의 아들 조희정, 조희철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선조가 세운 정려문이 있던 곳이다. 효자동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술지게미를 얻어 챙겨왔다. 모주 만드는 레시피를 찾아봐야 한다.
신교동 길에는 ‘(주)정말필요한회사’라는 재미있는 상호도 보였다. 서울농학교와 서울맹학교의 담장 벽화가 아름답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관련 기념관 54개 중 유일하게 개인이 운영하는 우당기념관. 1층은 기념관이고 2층은 개인집이다. 현 시점에선 이회영, 이상룡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제 더이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군인아파트로 변모한 자수궁 터를 지나 최상위 레벨의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 터, 윤덕영첩 구옥을 경유하여 상촌재에서 투어 마무리.



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오감으로 전해지는 다채로운 인도음악

21일 토요일 저녁, 배명숙 선생님의 초대로 제3회 사랑-인도문화축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정찬남 원장님과 함께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KBS아트홀로 향했다.
2017년 공연은 25년 간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양국의 문화교류에 일조하고 있는 류시화 시인이 큰 힘을 보탰다고 한다. 객석 앞자리 중앙에는 카슈미르 분쟁을 빚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주한대사가 나란히 착석하여 화합의 의미가 더했다. 아이쉬와라 라이가 주연한 영화 조다 악바르(Jodhaa Akbar)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던 인도음악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첫 순서는 노름마치 팀이 동해안별신굿을 테마로 태평소 선율과 징, 북, 꽹과리가 어우러진 타악연주로 흥을 돋구었다. 이어서 바리, 프라빈, 만주나띠 3인의 혼성 트리오로 구성된 인도의 트라얌(Trayam) 팀은 인도전통의 창과 앙상블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의 판소리와 다르게 연주와 창을 모두 앉아서 연행하는 좌창(座唱) 형식이어서 특이했다.
세 번째는 인도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의 ‘존재의 춤’으로 불리는 독무가 펼쳐졌다. 인생 최고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 종심(從心)의 노 명장은 ‘어니스티’라고 답변하더군. 전율…


이후 한국과 인도의 연주자 8인과 아스타드 데부의 협업 공연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Sarang은 힌디어로 ‘다채로운, 아름다운’을 뜻한다고 한다. 예정시간을 넘겨 9시 30분까지 진행된 쎄임쎄임벗디퍼런트(Same Same but Different)는 다채로웠고, 빽빽한 그물의 삼라(森羅)에 온갖 모습의 만상(萬象)이 어우러져 오감이 호사를 누린 정서 공유의 무대였다.

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동작동 국립묘지 역사문화트레킹

지난 토요일(10월 14일) 제36차 역사문화트레킹은 국립서울현충원과 남관왕묘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4호선 동작역 4번출구로 나와 육교를 건너서 9호선 8번출구 방향으로 500여 미터를 걸어 현충원 입구에 도착했다.
M1 카빈 소총과 M16을 든 충성분수대의 군인상이 인상적이었다.


현충문 지붕 위에는 경복궁 근정전(勤政殿)과 같은 7개의 잡상이 올라가 있었다. 현충탑 앞 제단에서 향을 올리고, 열십자 통로의 위패봉안관을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장병묘역… 전장을 누볐던 부하들과 사후까지 함께 하고자 했던 채명신 중장의 의기가 느껴져 숙연한 생각이 든다.


애국지사묘역 하단 우측… 헤이그 이위종 참서관의 숙부인 이범윤(1863~1940) 간도관리사,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에 함께 한 우덕순(1876~1950) 의사,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에게 투폭한 대한노인단의 강우규(1855~1920) 의사, 제국신문 창간자이자 태화관 독립선언서 낭독자인 이종일(1858~1925) 선생, 종로경찰서에 투폭 후 효제동 일대에서 일경을 상대로 전설의 1대 1000 총격전을 벌인 김상옥(1890~1923) 의사, 2015년에 1200만을 돌파한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열연했던 모델 남자현(1872~1933) 지사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애국지사묘역 하단 좌측으로 이동… 캐나다의 감리교 선교사로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의 참상을 보도한 석호필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 박사,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당하여 자결한 박승환(1869~1907) 시위대 제1대대장,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1878~1908) 의병장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애국지사묘역 상단 우측으로 이동…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아나키스트 이회영(1867~1932) 선생, 남만주 일대 조선혁명군의 총사령 양세봉(1896년~1934) 장군, 조선통감부 외교고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를 공격한 전명운(1884~1947), 장인환(1876~1930) 의사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임정요인묘역으로 이동… 독립군 비행사를 양성한 노백린(1875~1926) 장군, 서로군정서와 정의부의 참모장을 지낸 김동삼(1878~1937) 지사, 북만주 한국독립군과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1888~1957) 장군, 배설(어니스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양기탁(1871~1938) 선생,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박은식(1859~1925) 선생, 임시정부의 첫 국무령 이상룡(1858~1932)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국가유공자 제2묘역으로 이동… 한글연구에 헌신한 한힌샘 주시경(1876~1914) 선생, 애국가 작곡자와 일제 협력자의 양가감정을 갖게 하는 안익태(1906~1965)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2009년 8월 서거한 김대중 대통령 묘역은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협소하다. 최근엔 언론보도를 통해서 MB정권 시절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을 도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김대중 묘역 바로 옆 1시 방향으로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조모인 창빈안씨(昌嬪安氏)의 묘가 있다. 하성군 균(鈞)은 왕좌에 오른 후 아버지 덕흥군 이초(李岹)를 덕흥대원군으로, 할머니 숙용 안씨를 정1품 창빈으로 추존하여 각각 덕릉과 동작릉으로 능호를 올리려고 시도하였다 한다. 서달산을 주산으로 하여 공작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의 명당이라는데 좋아보이기는 했다. 그런데 알림판의 ‘Lady Changbin An’이라는 영어 표현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2012년 개봉한 조여정 주연의 영화 <후궁: 제왕의 첩>에서는 ‘The Concubine’이라 표현하더구만…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갈궁사(葛弓寺)는 조선 선조 때 창빈안씨의 원찰로 지정되면서 화장사(華藏寺)로 개칭되었고, 1983년에 다시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로 변칭되었다. 능인보전(能仁寶殿) 옆으로 지장보살입상이 자리하고 그 뒤편으로 3천의 작은 지장보살이 좌열해 있다.


현충원 사당출입문으로 내려오면 정유재란 시기인 선조 31년(1598)에 건립된 남관왕묘(南關王廟)로 갈 수 있다. 보통은 남묘(南廟) 현판이 달린 정문이 빼꼼히 열려 있다. 정문 안쪽에는 관성묘(關聖廟) 편액이 걸려 있다.


정전에는 현성전(顯聖殿) 현판이 달려있는데, 이건 동묘(東廟)에서도 본 거 같다. 경내에 금잡인(禁雜人), 재단법인(財團法人),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가 새겨진 석물이 보인다. 남묘는 일제강점기 때 남묘유지사(南廟維持社)라는 단체로 불하되었다고 하는데 이후의 소유권 문제는 자세히 모르겠다. 하여간 개인주택화 되어있는 듯하니 방문시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번 서울현충원 트레킹은 유난히 노쇼(No-Show)가 많아 허탈하다. 분명 을(乙)이 아닐진대 갑질을 당한 공허하고도 처참한 기분…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으니 결국은 소정의 참가비를 책정하고 사전에 입금을 받는 방향으로 가야할까보다. 그도 아니면 사전답사 없는 혼행으로 다니면 그만이지. 외로움보다는 고독이 훨 익숙하니까…

2017년 10월 7일 토요일

함양기행

추석연휴 중반 목금토 2박3일을 함양의 지리산자락에서 자연인으로 보내다 왔다.
강변역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함양지리산고속 버스요금은 1만8천원이다. 하행선 도로에 정체가 심하여 서상, 안의, 수동을 경유하는 노선에서 2시간이 연착되어 총 5시간 20분이 소요됐다.


지리산함양시장은 상설시장이면서도 매달 2일·7일·12일·17일·22일·27일에 5일장이 서는데 추석 당일(10월 4일)이 지난 시점이어서 상당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함양읍내에서 출발하여 37번 국도와 중기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770번지이다. 백전면 뿐만 아니라 서남쪽으로 이웃한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도 중기마을이 있다. 구글맵스로 검색해 보니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 경남 하동군 화개면, 전북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에도 중기마을이 있다.


추석 이틀 후인 6일 금요일(음력 8월17일)은 정찬남 교수님의 생신날이어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참치미역국으로 함께 조반을 들었다.


마당밭 왼편의 수은행나무 지척에 암은행나무가 있어 은행이 많이 달렸나 보다. 호프집에서는 20~30알에 몇 천원짜리 귀한 술안주다.


조율이시(棗栗梨枾) 중 배(梨)만 없다. 잠깐 사이에 대추, 모과, 호두, 오가피가 한가득이다. 호두나무에 호두 달린 것이 정말이지 신기하다.



쑥부쟁이와 개망초가 마당 한켠을 차지했다. 쑥부쟁이는 구절초와 꽃잎이 비슷하여 헷갈리지만 잎이 달라서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엔 생태계교란종인 미국산 쑥부쟁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신자들이 건립한 운산공소는 매주 오전 9시에 공소예절을 갖는다. 둘째주에만 저녁 7시에 미사가 봉헌된다. 부산을 제외한 경남일대를 관장하는 마산교구에는 51곳의 공소가 현존하고 있다. 아담한 외부와 단출한 성당 내부가 친근함을 더해준다.



ㅎㅎ휴먼스쿨 2관격인 이채로운 자연인의 집… 대문 우편에 인분을 먹이는 똥돼지 뒷간이 남아있다.


1913년에 본당이 설립된 함양성당은 100주년을 맞은 2012년에 새 성전을 봉헌했다. 1층은 강당이고, 성당은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십자가의 길 14처가 아름답다.



시간이 짧았던 터라 최치원이 조성한 것으로 유명한 함양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은 차량으로 스치듯 한바퀴 돌아보는 선에서 그쳤고, 함양 읍내의 학사루 등 문화유산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휴먼스쿨은 오랜 세월동안 인간성 회복, 도덕, 평화,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경주해온 김익완 사부님이 1996년 설립하셨다. MRA 전북 워커, 앰네스티 전북 간사로 활동해 오셨으며 지금도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통준사) 공동대표로 후생들의 본보기가 되어 주신다.

2017년 9월 30일 토요일

인천 통일어울마당

인천 구월동(九月洞)엘 가봤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야외광장에서 진행된 통일어울마당 부스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부평역에서 환승하여 예술회관역에서 내렸다. 예전의 구월동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거북이(龜) 형상도 달(月)의 모양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인천지하철… 객차 길이도 짧은 듯하고 폭도 좁은 느낌이다. 실제로 긴 의자에 6명만 앉을 수 있고, 선반도 없다(No Shelves!).


통일어울마당 행사에서는 한지에 통일 관련 글귀를 써주는 붓글씨와 페이스 페인팅, 통일 3D 프린팅 시연, 벨크로 사커, 통일 골든벨 등 몇몇 부대행사가 진행되었지만…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것은 북한음식 체험 코너였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가자미식해가 일품이었고, 닭고기살과 감자전을 잘라 고명으로 올린 평양온면 국물도 시원했다. 감자를 막 갈아 만두 모양으로 만든 감자막가리만두와 참기름으로 반죽한 통일약과 맛도 좋았다.


통일부, 광역시 같은 덩치들이 주관하는 행사라고 해서 나름 기대도 있었는데, 참여한 시민들의 숫자가 워낙 적어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통일’, ‘어울’, ‘마당’… 어느 한가지도 이뤄내지 못한 잔치였다.

2017년 9월 27일 수요일

한반도지도.dwg

A4 사이즈에 그린 우리나라 DWG 파일이다.
해안선과 휴전선을 PEDIT의 Join 옵션으로 결합하였다.
제주도, 울릉도와 독도는 편의상 제외하였다.


한반도지도.dwg

123D Design 프로그램으로 불러와 산맥도를 그리면서 Sweep, Extrude, Split Solid 등의 기능을 연습하여 동쪽과 북쪽이 높고 서쪽과 남쪽이 낮은 한반도의 경동지형을 구현하기 위해 준비했다.
단순화된 도면이 3D 모델링 작업에 수월할 것이다.
오토캐드와 123D 디자인은 같은 오토데스크社에서 만든 유틸인지라 호환이 잘 되어 좋다.

2017년 9월 23일 토요일

태극기.dwg

3차원 태극기 모형을 제작하려 하는데, 오토데스크社의 123D DESIGN 프로그램은 아쉽게도 정확한 치수를 구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2D 파일을 불러와 돌출 명령으로 모델링을 하려고 태극기의 dwg를 검색했는데, 태극기 표준 작도법대로 그려진 도면을 찾을 수 없다. 태극의 크기며 기울기가 중구난방인가 하면 건곤감리 4괘의 각도도 어긋나 있다.
이런저런 단체나 기관에서 주관하는 태극기 그리기 대회도 많은데 제대로 된 캐드 도면 하나 없다니…


태극기 만큼은 제대로 그려야겠기에 급한대로 AutoCAD 2008 체험판을 설치한 후 소시적 기억을 떠올리며 작도했는데 생각보다 슥슥 잘 그려진다.
가로 세로 360㎜와 240㎜ 짜리 완성본과 연습용 도면을 함께 싣는다.

Taegukgi_ex-1        Taegukgi_ex-2        Taegukgi_fi

태극기 연습용 DWG 도면으로 AutoCAD의 Offset, Mirror, Array, Rotate 명령 등을 연습할 수 있다.
또한 123D Design 프로그램으로 불러와 Offset, Pattern, Trim, Extend, Press Pull, Extrude, Split Solid, Scale 툴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9월 11일 월요일

낙마(落馬)

며칠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진 마광수(1951∼2017) 전 교수. 삶이 부정당하는 현실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견디기 힘든 생채기를 내었을 것이다.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2년 10월, 고인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1992년 8월 출간한 장편 <즐거운 사라>(청하) 때문이었다. 1998년 복직되었으나 2000년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마 교수가 주장하는 성담론엔 동의하지 않지만, ‘들 야(野)’자에서 ‘야하다’의 어원을 찾는 그의 재능이 헨리 밀러보다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클럽댄서 사라로 등마(登馬)하고 여대생 사라로 낙마(落馬)한 자유주의자 마광수는 <운명>(사회평론, 1995)을 통해 주역(周易)에 대한 나름의 독창적인 해석을 선보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가 맹목적으로 억압된다면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우리가 어떤 의견을 반박하고 반증할 수 있는 자유를 완전하게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의견이 진리라는 것을 정당화시켜 주는 조건’이 된다.

아직 금서(禁書)의 딱지를 떼지 못한 <즐거운 사라>의 중고거래가가 20만원을 넘었다는 뉴스다. 뒤늦은 위안이 될까. 마 교수의 영면을 바란다.

2017년 8월 16일 수요일

두 번의 유턴과 한 번의 직진

이른 아침에 모처럼 조조 영화를 관람했다. 요즘 가장 핫한 두 영화, 군함도와 택시 운전사… 잠깐의 망설임 끝에 택시운전사로 발권했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리며 녹색 브리사(Brisa) 택시를 모는 김사복은 이렇다 할 것 없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1980년 5월, 김사복은 밀린 월세를 해결할 수 있는 거금 10만원을 받기로 하고 독일 국적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태워 전라남도 광주로 향한다.
목도한 현실을 회피하는 광주 시내에서의 첫 번째 유턴, 치열한 광주와는 달리 너무도 평온한 순천에서의 두 번째 유턴, 그리고 미안함과 사명감으로 밟는 탈광주의 서울행 악셀레이터.
전두환 씨 측은 계엄군이 비무장 광주시민에게 조준 사격하는 영화의 장면은 날조라며 불편해하고 있다. 그러나 5·18기념재단의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에 법원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삶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과정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2017년 8월 5일 토요일

동구릉 역사문화트레킹

오늘 34차 역사문화트레킹은 동구릉이다.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은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를 모신 경복궁 동쪽에 있는 9기의 왕릉을 뜻한다. 건원릉을 조성한 후부터 하나씩 왕릉이 추가되면서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1885년에 수릉이 들어서면서 동구릉(東九陵)이 되었다.


먼저 찾은 곳은 추존 황제 문조와 신정황후의 합장릉인 수릉(綏陵)이다. 23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는 일찍이 대리청정을 통해 정치력을 발휘하여 기대를 모았으나 22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효명세자는 창경궁 후원에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민가 형식으로 120여 칸의 연경당(演慶堂)을 짓기도 했다. 또한 어머니인 순원숙황후 김씨의 40세 생일을 축하하는 춘앵무(春鶯舞)를 만들기도 했다. KBS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이 효명세자로 분했었다.
흔히 조대비로 알려진 신정왕후 조씨는 훗날 이하응의 차남 명복(고종)을 효명세자의 양자로 삼아 철종의 뒤를 이어 왕위를 잇게 한다. 비각에서 ‘대한 문조익황제수릉 신정익황후부의’라 새겨진 비문을 살펴보았다.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은 조선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3글자 이름이다. 건원릉으로 향하는 금천 위에는 10개의 기다란 돌이 놓여 있고, 봉분에는 특이하게도 잔디가 아니라 함경도 영흥땅의 억새가 자라고 있다.


건원릉이 단릉인 것과 마찬가지로 태조의 원비인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齊陵)은 북한 개풍군에,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貞陵)은 성북구에 단릉으로 조성돼 있다.


휘릉(徽陵)은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침으로 단릉이다. 정자각에 익랑(翼廊)이 붙어 있어 특이하다. 인조와 정비 인열왕후 한씨의 묘호는 파주 장릉(長陵)이다.


휘릉에서 원릉으로 이동하는 길에 방치된 채로 누워있는 의문의 석물을 박아 보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어디에 세워져 있던 것인지 고증하여 원상복구해야 할 터인데… 보기가 민망하다.


원릉(元陵)은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쌍릉이다. 비각에는 특이하게 비석이 3개나 들어서 있다.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의 홍릉(弘陵)은 고양시 서오릉 중의 하나이다.


조선왕릉이 생태계의 보고라는 말은 과연 허언이 아닌가 보다. 수릉과 현릉 사이 지점에서 장수풍뎅이 2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릉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운 좋게도 막 허물을 벗고 세상에 나온 매미의 경이로움도 감상할 수 있었다.


올여름 들어 최고 폭염이었다는 고온에다 경기도 8개 시·군에 오존주의보가 발령될 만큼 트레킹하기 힘든 날이어서 수릉과 건원릉만 그런대로 둘러보고 나머지 현릉(문종·현덕왕후), 목릉(선조·의인왕후·인목왕후), 휘릉(장렬왕후), 원릉(영조·정순왕후), 경릉(헌종·효현왕후·효정왕후), 혜릉(단의왕후), 숭릉(현종·명성왕후)은 살펴보지 못했다. 특히 효명세자의 아들인 24대 헌종과 정비 효현황후 김씨, 계비 효정황후 홍씨가 하나의 곡장 안에 나란히 잠든 삼연릉 형식의 경릉(景陵)과 14대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무덤이 각각 다른 언덕에 조성된 동원이강릉의 형태를 이루는 목릉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