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9일 일요일

안산자락길 역사문화트레킹

제2차 역사문화트레킹(2015.3.28)은 서대문독립공원을 거쳐 안산자락길을 통과, 연세대 교정으로 내려가는 코스였다.



망루(입구) → 매표소 → 보안과 전시관 → 중앙사 → 12·11·10옥사 → 공작사 → 한센병사 → 추모비 → 통곡의 미류나무 → 사형장 → 시구문 → 격벽장 → 여옥사 → 취사장 → 통용문(출구) 순으로 둘러봤다. 10옥사 바깥쪽 붉은 벽돌에 걸린 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컷~!



공주 계룡산과 종로 인왕산, 종로 백악산 아래는 조선왕조 도읍 후보지였다. 그만큼 안산은 해발 296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무악재를 통해 인왕산과 이어지는 천하의 명당 자락이다. 안장 안(鞍)자를 쓰는 안산(鞍山)은 예전엔 길마재로 불렸다.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을 가리키는 우리말이 ‘길마’이기 때문이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는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安山)은 고려 초엽부터 불리운 지명인데, 편안할 안(安)자와는 거리가 멀어보여 안타깝다. 책상 안(案)자를 쓰는 안산(案山)은 남주작(南朱雀)을 상징하여 북현무(北玄武)인 주산(主山)과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와 더불어 풍수학상의 4요소를 구성한다.



안산 꼭대기에는 저 멀리 북방의 상황을 남산(목멱산) 쪽으로 알리는 동봉수대가 복원되어 있다. 안산을 한 바퀴 싸고도는 7km의 순환로는 완만한 경사로에 나무데크까지 설치돼 있어 노약자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데, 백백한 메타세쿼이아와 잣나무길이 청량감을 더해준다. 숲속무대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쉬고 가기에 그만인 곳이다.


2015년 3월 26일 목요일

애국으로 승화된 신심

안중근(1879~1910) 의사의 부친 안태훈(1862~1905)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동학군으로부터 노획한 5백 석 가량의 양곡을 군량미로 전용한 것이 문제가 되어 조정이 간여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상경, 명동성당으로 피신하여 1년을 지냈다. 프랑스인 신부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1년 뒤인 1895년 천주교에 입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천주교 관련 서적을 가지고 귀향(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하여 전교활동을 펼친다.
안중근(토마스) 역시 독실한 천주교도였다. 그의 신심은 개인적 구원에 그치지 않고 민족구원과 동양평화 사상으로 승화하여 독립전쟁과 하얼빈 의거로 표출되었다. 뤼순감옥 수감 중에는 그에게 영세를 주었던 빌렘(Joseph Wilhelm, 홍석구) 신부가 성사를 베풀기도 했으나, 당시 한국 천주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뮈텔 주교는 의거가 일어난 1909년 10월 26일 저녁에 조선통감부를 방문하여 이등박문(伊藤博文)의 죽음에 조의를 표했다. 더하여 그의 의거를 살인행위로, 그를 단순 살인자로 규정하면서 그가 천주교 신자인 사실을 부인하기까지 했다. 1993년에 이르러서야 안중근 도마는 김수환 추기경에 의해 평신도로 복권되고 의거의 정당성을 재평가받게 된다.


2009년 ‘TV쇼 진품명품’(739회)에 삼중스님이 들고나온 안의사의 유묵 경천 敬天…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쓴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룬 독창적인 글씨체가 돋보인다. 당시 김영복 고서 감정위원은 전시회 보험가액을 참고하여 최종 감정가를 6억원으로 책정했다면서, 실제 가격은 100억이든 1000억이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글씨 자체의 미학보다는 글쓴이 말년의 고매한 절개가 가장 중요한 감정 포인트가 된다는 멘트도 기억난다. 안의사의 하늘은 천주이자 조국이었을 것이다. 어찌 한낱 테러리스트로 폄하할 수 있을까.

2015년 3월 26일 오늘은 대한의군 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하신지 105주기 되는 날이다. 못난 후손들은 매번 안배진삼(安倍晋三)류에 놀아나며, 아직 그분의 유해조차 찾질 못하고 있다. 진정 애통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공민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별다른 약속이 없는 일요일 밤이면 관심있게 시청하곤 한다. 요사이엔 기획특집으로 ‘드라마 속 역사인물’ 시리즈를 방송하는데 김춘추, 궁예에 이어 어제(3월 22일) 66회는 ‘개혁과 욕망 사이’라는 부제로 드라마 〈정도전〉 속 공민왕을 탐색해보는 시간이었다.
왕이 죽은 뒤에 신하들이 올리는 이름인 묘호(廟號)와 왕이 죽은 뒤에 중국의 황제가 내려준 이름인 시호(諡號)를 구분하고, 공민(恭愍)이란 것은 명(明)으로부터 받은 시호였으며, 왕위계승서열에 밀려 3수 끝에 조카인 충정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사연이라든가 하는 유익한 내용도 습득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도 여지없이 방출됐다.


초반부에 최원정 아나가 “왜 공민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인식되나?”라는 발제를 하고 여기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실제로 공민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입니다. 공민왕 뒤에 우왕과 창왕이 있었는데 폐위됐죠. 공양왕은 양위를 한 것이고요.”라는 서울시립대 이익주 교수의 답변이 나왔다. 엥?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비록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되고 선위했지만, 31대 공민왕 뒤에도 엄연히 우왕, 창왕, 공양왕의 세 임금님이 왕위에 있었다(이성계를 35대 고려국왕으로 셈한다면 4명).
이교수의 논리대로라면 조선의 고종과 순종도 일제의 파워에 의해 퇴위를 당했으니, 25대 철종이 조선의 마지막 왕이어야 하겠네. 이렇게 되면 1863년 고종 즉위부터 강제 병합당한 1910년까지의 조선국과, 공민왕 사후 1374년부터 1392년까지의 고려국은 각각 47년과 18년 동안 왕좌를 지킨 임금이 없게 된다.
승자의 입장에서 조선 초기에 편찬된 “〈고려사〉에서는 공민왕을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했다는 맥락 정도로 소개하면서 역사 속 사실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를 생각케 해야지, 국사학과 교수라는 분이 무책임하게 지상파 공영방송 채널에서 “공민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이라고 단정지어 말해버리면 어쩌란 말인지…ㅉㅉ… 당장 초등 5학년 역사 쪽지시험에 고려의 마지막 왕은 누구일까요?라는 문제라도 나올라치면 아이들이 답안에 죄다 공민왕이라고 적어내는 상황… 생각해 봤는지…
요컨대 방송에서 90학번인 이윤석씨가 소개한 “공민왕은 고민이 많은 왕, 그래서 그 뒤로 우왕 좌왕(창왕)하다가 공손하게 양보(공양왕)했다.”는 학창시절 청킹(chunking) 문구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2015년 3월 14일 토요일

명강사? 명강의?

가끔씩 서울시 평생학습포털(sll.seoul.go.kr)에서 제공하는 사이버 강의와,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의 평생학습 e-배움터 홈런(homelearn.go.kr) 및 온라인경력개발센터 꿈날개(dream.go.kr),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창조학교(k-changeo.org) 등의 학습 웹사이트를 검색하여 무료강의를 고맙게 듣곤 한다. 역사 관련 공부를 좋아하는 터라 요며칠 사이에도 ‘역사’ 키워드로 강의 검색을 했더니 마땅한 것이 없고, 홈런 쪽에 그런대로 너댓 개가 올라와 있기에 수강신청을 했다. 우선 김○○ 이란 분이 강의한 《역사 속의 불세출 여인들》 시리즈로 동양편 5강과 서양편 5강을 들어봤는데… 이건 뭐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듯하여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양 역사 속의 불세출 여인들》 4강  〈중국 최초의 여왕 측천무후〉 편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측천무후를 측전무후로 잘못 표기해 놓았다. 측(則)자는 ‘곧 즉’, ‘법 측’, ‘본받을 측’이니 측천(則天)의 의미를 “곧 하늘이다”, “하늘 같은 법칙”, “하늘을 본받겠다”로 풀이하면 공통적으로 하늘 ‘천(天)’자가 들어가는데 이러한 맥락을 모르면 엉뚱하게도 측전이라 칭하게 되는 것이다.
5강 〈중국의 국모로 칭송받는 송경령〉 편에서는 손문이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를 창시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필리핀 공화국 수립(1898)이 시기상 앞서기 때문에 ‘아시아 최초’라는 표현은 엉터리가 된다. 손문의 중화민국 수립(1912)은 아시아가 아니라 중국 최초의 공화제 국가 탄생을 의미한다. 하기야 신문 칼럼 같은 곳에서도 중국을 최초로 하여 글을 써대는 얼치기들이 지금도 널려 있기는 하다.

《서양 역사 속의 빛나는 여성 리더십》 1강 〈로마를 긴장시킨 세기의 미녀 클레오파트라〉에서 강사는 주인공 클레오파트라의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11세를 처음부터 내내 프롤레마이오스로 호칭한다. 톨(tol)과 롤(rol)… 시각적인 착시가 역사적 지식으로 굳어진 것일까. 또한 옥타비아누스를 자꾸 옥타비우스로 발음하여 듣기에 거북하다.
2강 〈무적함대를 이긴 절대권력가 엘리자베스 1세〉 편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태어났던 1533년에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 지배하고 있었던 때”라 얘기하는데 이는 얼토당토 않은 말이다. 조선 4대왕 세종(이도)과 11대왕 중종(이역)의 재위기간은 각각 1418~1450년과 1506~1544년이니 말이다. 또한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를 ‘영국 최초의 여왕’으로 소개하는데, 이복언니 메리 1세(재위 1553~1558)가 영국 최초의 여왕이다. 또 가톨릭을 카톨릭으로 잘못 표기하기도 한다.
5강 〈노벨문학사에 빛나는 인권운동가 펄 벅〉 편 앞부분에서는 펄벅이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스웨덴의 문인 셀마 라겔뢰프(Selma Lagerlof)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19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펄벅은 비유럽권 여성 작가 중에서 최초로 193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뒷부분의 교안에서는 ‘미국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이라 기입되기는 했다.

강의 전반부와 중반부에 나오는 강사 소개를 보면 주로 금융권 근무 경력이 많고, ‘2012년 국민성공시대 명강사 33인 선정’이란 문구도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공공기관 및 대기업의 출장강의를 다니고 다수의 자기계발 서적도 출간하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분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선별적 복지에 대한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면서 서양편 4강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편을 가장 자신감있게 강의한 것 같다. 현장강의는 직접 들어보지 못해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인강만 놓고 보자면 전방에 설치된 스크립트를 보고 말하는 것일텐데도… 문장의 응집성이나 통일성이 없고 전후관계가 불분명하며 접속어·지시어·대명사의 사용이 부적절하다. 요컨대 가리키는 바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아 가청성이 떨어진다. 화면으로 보여지는 요점정리도 맞춤법이 안 맞고 문장 짜임새가 기대치를 밑돈다. 강사 자신의 소개 멘트는 “불멸의 여인 리더십을 인문학으로 찾아보는 김○○입니다.”이다. 인문학? 글쎄… 리더십이나 조직관리, 재테크 분야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사실로서의 역사’ 지식만큼은 세밀함이 떨어진다.
경기 홈런 측 인강 제작팀에게도 문제가 많다. 사전에 원고를 검토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담당PD나 제작팀의 역할일 터인데 무료 인강이기 때문에 콘텐츠의 질이 낮아도 상관없다는 얘기인지… 귀차니즘으로 수정없이 대충 넘어갔다면 직무유기이며, 강사로부터 건네진 원고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또한 인문학적 기초지식이 희박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으니 이래저래 외통수가 되겠다. 서울시나 경기도 차원에서 제공되는 콘텐츠라면 개인 블로그글이 아니므로 콘티와 멘트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 않겠나. 땅바닥이 움푹 패어서 다니다가 빠지기 쉬운 곳을 ‘허당’이라 한다. 도대체 무엇이 명강의고 누가 명강사란 말인가?????

2015년 3월 10일 화요일

국경 만들기와 국경 허물기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의 단둥(丹東)시는 북한 신의주(新義州)시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접해 있는 국경도시이다. 예전에는 안동이라 불렸던 곳으로,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 이후 일본제국은 1909년 9월 4일 간도협약을 통해 간도(間島)를 청제국의 영토로 인정하는 대가로 안둥(安東)과 펑톈(奉天)을 연결하는 안봉선(安奉線, 단둥~선양) 부설권을 획득했다.


제65차 평생교육사 목요회(2015.3.5)는 2006년부터 수차례 단둥을 드나들며 현지조사를 해온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강주원 박사를 모시고 인류학 관점에서 바라본 단둥 이야기를 들었다.


단둥에는 북한사람, 한국사람, 조선족 그리고 북한에서 태어난 중국국적의 북한화교… 이렇게 4개 집단이 한국어를 공유하며 국경과 연관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남북이 거래하려면 남측의 남북교류협력센터와 북측의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조선족과 북한화교를 중개로 한 편법적인 교류방식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단둥에서는 북한·중국·한국의 국기를 함께 내건 상점들이 있는데, 이는 세 나라 사람 모두가 고객임을 의미한다. 또한 유리에 부착된 “사랑을 전합니다, 서울-중국-평양, 친절·정확”이란 시트지 문구를 통해 단둥에서 삼국 간의 택배가 서비스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에서 제작된 수예작품은 현재 A4 사이즈의 경우 한국으로의 배송까지 대략 15만원 선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강주원 박사는 다년 간의 연구논문을 모아 “국경이 있어도 필요에 따라 매일 허물고 다시 짓는다”는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2012)라는 제목의 저서로 내놓았다. 책에는 황석영 소설 「강남몽」(창비, 2010)의 한 단락이 인용되어 있다.


평소 인류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루스 베네딕트, 마가렛 미드, 레비 스트로스 같은 유명학자들이나 오지탐험을 통해 미지의 뼛조각을 발견하는 모험과 신비의 세계였지만, 강박사의 현장체험담을 들으면서 선입관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학문이 아님을 느끼게 됐다. 아울러 서로 다른 인포먼트의 정보를 교차확인한다든가 라포형성이나 참여관찰법의 빈틈을 채우는 요령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케 됐다.


호랑이가 엎드려 앉아 있는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호산장성(虎山長城)을 중국당국은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으로 통제하는 바, 우리 고구려의 천리장성 끝단 박작성(泊灼城)은 점점 그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도 하다.
이미륵의 소설과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기억되는 한반도 최장하천 압록강은 중조국경조약에 근거하여 북·중이 공동관리하고 있다. 압록강 중앙이 국경이라는 생각은 단순한 기계적인 착각이며, 비록 국경이지만 이윤을 좇는 자본의 흐름 속에서 교류를 방해하는 요소는 미미하다. 2000년대 전후 단둥과 신의주 두 국경도시의 경제가 역전된 상황에서도 단둥 사람들은 자신들이 획득한 부(富)는 중·조국경무역에서 나온 것이며, 신의주와 무관하게 단둥의 경제적 변화가 이뤄진 적은 없다고 말한다.
사족 하나… 강을 사이에 두고 단둥은 신의주보다 1시간이 느리다. 그렇게도 자주와 주체를 부르짖는 북한이 어째서 표준시는 일본을 따라서 우리와 같은 동경 135°를 사용하고 있는지 급궁금해진다.


단둥에는 월 300~400달러의 급여로 일하고 있는 북한노동자 숫자만 2만명이 된다고 한다. 개성공단에 필적하는 규모이며, 임금수준은 오히려 높다. 똑같은 제품이 남북관계와 삼국형편에 따라 ‘메이드 인 디피알케이’와 ‘메이드 인 차이나’, ‘메이드 인 코리아’로 태그를 바꿔 붙인다. 놀랍게도 우리가 즐겨 입는 아웃도어의 1할 정도는 평양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2010년 3월 천안함사건 이후 MB정권이 대북 경제제재로 단행한 5·24조치는 별반 파괴력이 없는 듯 보인다. 강박사는 자신의 논문에 5·24조치의 무실효성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는 이유로 게재가 기확정된 통일부 논문집에서 누락되는 갑질도 당했다고 한다.

3월 5일 모임이 있던 날 아침에 벌어진 희한한 사건을 두고, 북한 매체는 어처구니 없게도 김기종을 감히 안중근 의사에 비하는 헛소리를 해대는 모양새인데… 근본적으로 북한정권도 정신병자 수준으로 문제가 심각하지만, 민간부문에 비해 현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형편없이 부족한 우리 정부부문에서도 말만 앞세우는 통일대박론은 좀 걷어치우고 이제는 전향적인 사고를 좀 가져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개성공단에의 달러 유입만 틀어막으면 경제압박이 완성될 것으로 기대하는 단순무지함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강박사에 따르면, 국경이 있되 필요에 따라서 허물고 다시 짓는 곳이 단둥이다. 단둥에서 성사되는 경제활동에는 한국·중국·북한 삼국이 고루 얽혀 있다. 더구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가 공식적인 교류보다 많다. 북중무역의 이면에는 삼국무역이 몸을 숨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네 집단간 교류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단둥이라는 공간에 한번쯤 여행이라도 생각해봄직 하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귀중한 얘기를 재능기부해 주신 강주원 박사님께 감사의 말씀 올린다.

2015년 3월 3일 화요일

걷고 싶은 역사문화트레킹

제주올레길, 지리산둘레길, 한양도성길, 문경옛길, ○○숲길…
전국적인 아웃도어 광풍, 걷기 열풍에 편승하여 각 지자체는 앞다퉈 새로운 길들을 조성해 관광객 유치에 힘쏟고 있다.
선도는 역시 제주도올레길이다. ‘좁은 골목’을 지칭하는 올레는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하여 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돌(현무암)로 쌓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라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착안하여 시작된 제주올레는 일본의 규슈올레가 벤치마킹해 갈 정도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책로이다.
그러나 지리산둘레길, 북한산둘레길, 서울둘레길처럼… ‘사물의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를 뜻하는 둘레란 단어가 붙은 둘레길(trail)이 가장 많다.
‘길게 뻗어 나간 산이나 강 따위에서 갈라져 나간 갈래’를 뜻하는 자락이란 말이 결합된 안산자락길, 소백산자락길과 같은 트레일도 잘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산꼭대기를 목표로 수직방향으로 오르는 것을 등산(climb)이라 하고, 상대적으로 능선을 따라 수평방향으로 걷는 것을 트레킹(trekking)이라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이때 ‘ㅏ’와 ‘ㅓ’의 모음 차이에 주의해야 한다. 트래킹(tracking)이란 단어는 영화에서 레일을 이용하여 카메라를 움직이며 찍는 것이나, 항공우주 분야에서 인공위성 같은 비행체를 추적·관측하는 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쇼핑몰의 ‘트래킹화’라는 표기는 잘못된 것이다.


등산을 하기에는 무리다 싶을 때 좀더 쉽게 자연에 접근하여 쉬엄쉬엄 즐길 수 있는 주변의 둘레길을 찾아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풍광 좋은 자연경관에 우리 삶이 녹아있는 역사와 문화의 인문경관이 결합된 곳을 찾아 걷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역사문화트레킹이다.
지난 1월 31일(토)에는 마음을 모은 평생교육사들과 함께, 제1차 역사문화트레킹으로 혜화문에서 시작하여 이간수문까지 순성했다(혜화문 → 한양도성 낙산구간 → 한양도성박물관 → 동대문 → 청계천 오간수문지 → 이간수문). 참가자들 모두가 만족하는 유쾌한 일정이었다.


결코 무리해가며 많이 걸을 필요가 없다. 월 1회 정도로 10㎞ 안쪽이면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산수도 빼어나지만,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리울만큼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자기 주변지역의 문화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맘 편하게 자연과 호흡하는 와중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더하고, 공정여행이나 착한소비 개념까지 보탠다면 이보다 더한 역사교육과 체험학습이 어디에 있을까.
다만 한동안은 내가 향도(嚮導) 역할을 떠맡아야 할 형편이니 장소선정부터 사전답사에 현장해설까지…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