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북촌 춘곡댁 방문

오후에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의 ‘북촌한옥마을 춘곡 고희동 가옥 답사’에 동참했다.


한국 가톨릭 순교시절에 북촌 지역을 관할하던 가회동성당 4층 옥상에 올라 바라본 가회동 31번지 북촌 한옥마을의 모습이다.


진단학회 터(震檀學會地)
계동 98번지 언저리는 1934년 5월 7일 일제의 문화통치에 대항하여 민족문화를 수호, 발전코자 설립한 진단학회 사무소가 1936년 초 성북동으로 옮겨갈 때까지 있던 자리이다. ‘옛것(古)을 즐긴다(樂)’는 뜻의 락고재(樂古齋)라는 옥호를 지닌 이 터의 주인은 원래 친일사학자 이병도(李丙燾)였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한옥 부티크 호텔(Hanok Boutique Hotel)로 재탄생해 운영되고 있다.


유심사 터(惟心社地)
계동 43번지는 일제강점기부터 보존된 한국 전통 가옥으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겸 문인인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거처하면서 불교 월간잡지 「유심(惟心)」을 발행하던 출판사가 있던 곳이다. 천도교계 최린의 물밑작업으로 기독교계 이승훈과 불교계 한용운이 합심하여 3·1운동의 준비작업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유서깊은 곳인데… 둘러보기 전에는 바보같이 사찰(惟心寺)이 있던 장소로 오인하고 있었다.
그날의 함성과 안간힘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만해당(萬海堂)’이란 이름의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있다.


석정보름우물
20세기 초 서울에 상수도시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 우물은 주된 음수(飮水), 생활용수 공급원이었으며 계동길 110번지 석정보름우물도 북촌 주민들의 중요한 음수원이었다. 석정(石井)은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명천(名泉)이었으며, 이 우물물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인근 궁궐 궁녀들도 몰래 떠다 마시며 성은을 입어 아이 낳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정조 8년에 갑자기 우물물이 요동치며 흘러넘치는 변고가 일어나기에 조사한 결과, 병조판서 댁 서자를 사모하던 망나니의 딸이 상사병을 앓다 결국 그를 죽여 우물에 유기하고 자신도 뒤따라 투신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원혼제를 올려주자 범람은 멈추었으나, 이후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지곤 해서 보름우물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보름우물은 초창기 천주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1794년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 온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사제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 최인길(마티아) 집에 숨어 지내면서 조선땅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1845년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도 북촌 지역에서의 짧은 사목기간동안 이 물을 성수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컨대 보름우물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성수이자 포교의 원천(源泉)이었던 것이다. 천주교 박해당시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하자 보름우물 샘물이 핏빛을 띠면서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람들이 먹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석정보름우물은 1987년에 한 차례 복원됐으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돌로 채워진 우물을 2013년에 다시 복원하고 안내판과 안전을 위한 투명 덮개를 함께 설치했다.


원서동 고희동 가옥(苑西洞 高羲東 家屋)
춘곡(春谷) 고희동(1885~1965) 선생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에 직접 설계해서 지은 한옥으로, 41년간 거주하던 곳이다(등록문화재 제84호). 고희동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서, 새로운 조형 방법을 후진에게 가르친 미술 교육자이며 화단을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미술 행정가이자 미술 운동가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생활공간 외에 지필묵과 물감, 이젤이 있는 화실을 따로 두었으며 안채와 사랑채를 잇는 복도를 만들고 추위를 막기 위해 유리창을 달았다. 정면 7칸, 측면 2칸 반의 일자형 안채가 동향을 하고 있고, ㄷ자형 사랑채가 안채를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이 집은 1918년 서양과 일본 집의 장점을 한옥에 적용한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수정씨의 인기만화 아기공룡 둘리에 쌍문동 고길동씨의 조카로 ‘희동이’라는 아기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우습게도 처음엔 그 생각부터 났다.

북촌 투어를 위해 수고해주신 박병호 서울시 문화해설사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봉사자 분들께 감사말씀 전한다.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파생상품 기본교육

제63차 평생교육사 목요회(2014.11.27)는 돈줄을 죄고 있는 미국과 풀어제끼는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의 위험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파생상품의 이해’ 강의로 진행되었다.
먼저… 한 나라의 통화단위와 다른 나라의 통화단위가 교환되는 비율인 환율(exchange rate)의 정의와 종류, 기능통화로 대표되는 통화(currency)의 종류와 역할, 외화환산(foreign currency translation)의 의미와 과제, 화폐성과 비화폐성으로 구분되는 환위험(exchange risk) 노출항목, FX(foreign exchange)의 뜻과 종류 및 커버거래 등에 대한 개념을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기초자산·1차상품)의 가격에 의하여 결정되는 상품(2차상품·변형상품·혼합상품)인 파생상품(derivatives)은 장래의 위험을 회피하거나 수익을 올리기 위한 투기적 목적으로 거래된다.
초기엔 곡물 등의 상품거래에 활용되었으나, 금리·환율·주가·주식 등의 파생금융상품이 개발되면서 크게 발전했고, 현재는 대상상품이 기온·강우량 등의 기후파생상품이나 특정기관의 신용도, 전력과 같은 사회기반자원 등등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
파생상품의 종류는 기초자산에 따라 현물·선물·신용도, 거래장소에 따라 장내파생상품·장외파생상품으로 나눌 수 있고, 기본상품으로 선물(futures)·스왑(swaps)·옵션(options)이 있다.


이밖에도 자금운용의 개념과 주요 취급상품, 데이터 흐름도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다.
몇년 전에는 저환율을 믿고 파생상품 키코(KIKO)를 계약했던 중소기업들이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파생상품에 대한 양도세 부과 문제로 증권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기도 하다.
주식이나 외환투자의 개념과 평정심에 대해 웬만큼 두꺼운 책 한권 읽는 거보다도 알차고 유익한 강의로 수고해주신 황인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사회적기업 기본교육

제62차 평생교육사 목요모임(2014.11.20)의 주제는 ‘사회적 기업’.
지난 추석 무렵에 카리타스사회적기업지원센터의 ‘찾아가는 설명회’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일정을 조정한 끝에, 오늘 저녁에 교육이 진행되었다.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이란 사회적기업육성법(제2조) 상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을 지칭한다. 일자리 제공형, 사회서비스 제공형, 혼합형, 지역사회공헌형, 기타형의 유형이 있다.
예비사회적기업(Preliminary Social Enterprise)이란 사회적기업 인증요건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하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영업활동을 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등 사회적기업으로의 실체를 갖추고 있어 일정기간의 지원 또는 성장을 거쳐 사회적기업으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관·단체를 말한다.


처음부터 바로 사회적기업을 설립할 수도 있고, 예비사회적기업 단계를 거쳐서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을 수도 있다. 이는 지원금 등의 제반여건을 고려하여 기업이 결정할 사항이지만, 조직의 ‘주된 목적’이 ‘사회적’ 목적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이 공통점이다.
이밖에도 사회적기업의 현황, 인증요건, 지원제도, 구체적 사례 등에 대해서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요컨대,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조직을 말하는 것이다. 수익도 남기고 복지서비스도 제공하는 영리기업과 자원봉사의 중간형태, 좋은 일을 하면서도 수익을 내는 기업,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으로 이해하면 쉽겠다.
“사업이 이익을 내면서 동시에 윤리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경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는 존 맥키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철저한 사전준비와 사회적 미션 실현을 위한 치열한 고민이 선행·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을 위해 다리를 놓아준 김아람 선생님, 성심껏 강의해 주신 조한수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 올린다.

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지금 행복하십니까

기쁨을 느끼고 만족하는 상태를 행복(幸福)이라 한다면, 사람마다 각자 추구하는 행복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행복이라고 여기고 어떤 기준으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일까?
제61차 평생교육사 목요회(2014.11.13) 강의 주제인 “지금 행복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자신있게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국보 121호 하회탈을 연상시키는 호탕한 얼굴 옆선이 매력적인 (주)방주민속식품 성달현 대표님의 행복 강의는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을 합창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희극배우와 비극배우, 자존심과 자존감, 말씀과 말씨와 말투의 차이점을 개념 설명하고 이어서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구닥다리 유머가 의외로 잘도 통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쩌면 크게 고민하며 염려할 일은 생각보다 별로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외부에서 행복학 전문강사님을 모셨다면 현란한 파워포인트 자료와 빔이 쏘여지는 화려한 스킬에 압도되어 끄덕끄덕하는 시간은 됐을지언정 이번과 같은 진정성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소소한 일상을 음미하고, 사회적 부조리와 물질만능주의에 의연히 맞서며, 성찰하고 묵상하고 이타적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분명 행복지수는 높아질 터이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원칙을 꿋꿋이 지켜나갈 때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더하여 점점 후퇴하고 있는 복지정책들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겨보고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작업은 너무나 당연하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제1회 서울둘레길 걷기축제… 3-2코스 완주

157㎞에 이르는 서울둘레길 전 구간(8개 코스) 개통 기념으로 열린 제1회 서울둘레길 걷기축제에 다녀왔다. 고덕·일자산 3코스 중에서 3-2코스인 고덕역~방이동 생태경관보전지역(올림픽공원역)까지 약 7.6㎞를 걸었다.
5호선 상일 방면 고덕역 4번 출구에서 300m 거리인 강동아트센터에 집결하여 접수를 마치고 안내지도와 스탬프북(패스포트)을 받았다. 서울둘레길이고 상일동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서울시장과 강동구청장은 이해한다 처도 무슨무슨 정치인들의 잘나신 축사는 왜 그리도 많은지 내참,, 덕분에 10시 20분이 돼서야 걷기 시작,,

강동아트센터(9:30) → (밴드공연·축사) → 일자산 초입(10:20) → 일자산 잔디광장(11:20) → (점심·밴드공연, 12:20 출발) → 둔굴 → 올림픽공원 물소리광장(13:20)


높이 134m의 일자산은 서울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의 경계를 이룬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의 높낮이가 거의 없어 한 일자(一)와 비슷하다고 해서 一字山이라 불린다.
작은 바위굴인 둔굴은 고려말의 문인·학자인 이집(李集, 1314년~1387)이 신돈(辛旽, 1322~1371)의 잘못을 탄핵하고, 장차 화가 미칠 것을 피하기 위해 잠시 몸을 숨긴 곳이다. 이집의 호를 따라 둔촌(遁村)이라 부르며, 둔촌동(遁村洞)이라는 지명은 둔굴에서 유래되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로 유명한 개성 성거산(聖居山)의 두문동(杜門洞)이 연상된다.


차가운 날씨에 많은 분들이 진행요원으로 친절히 애써 주셨는데… 도로변에서의 안내는 잘 되었으나, 산중에서는 안내 길이가 다소 멀었기에 참가자들이 산행 도중에 헤매는 경우도 발생한 거 같다.
틈틈이 서울둘레길을 주유하면서 우체통을 재활용한 27개의 빨간색 스탬프시설을 눈여겨 봐야쥐~

2014년 11월 2일 일요일

남한산성 씨순길

2014년 11월 1일(토) 오전 10시,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 집결. 20m 이동하여 9-1번(또는 52번) 버스를 타고 산성 안 종점에서 하차. 총 25명의 참가자 중 몇분은 하나 옆 정거장인 ‘남한산성입구’역과 혼동하여 지각사태 발생.
참고로 9번 버스는 많이 돌아가므로 15분 정도 더 소요됨.
산성역 → (버스) → 남한산성행궁 → 숭렬전 → 수어장대 → 우익문(서문) → 마천역에 이르는 수월한 코스.



한강 남쪽 제일의 누각이란 의미의 남한산성행궁 정문인 한남루(漢南樓)에서 순성 출발했다. 기둥에 세로로 써 붙인 주련(柱聯)의 글귀를 통해 당시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4개의 초석도 눈길을 잡는다.


왕이 집무를 보던 외행전 옆에는 발굴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지와 와적지가 보존돼 있다. 잘 다듬은 초석과 기단석이 사용된 건물은 벽 두께가 2m나 되고, 조선시대 것의 5배인 20㎏짜리 대형기와가 사용되었다. 대당전쟁을 위해 문무왕이 한산주(漢山州)에 쌓은 주장성(晝長城)이 남한산성의 토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남루를 지나서 계단을 올라 외삼문과 중문을 거쳐야 본전에 이르니 삼문삼조(三門三朝)라는 조선 궁궐의 구성원칙이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 구조는 비슷하지만 왕의 거처(침전)인 내행전이 외행전보다 조금 더 넓다. 내행전(밤)과 외행전(낮)을 오가는 고립 47일 동안 능양군(綾陽君) 이종(李倧)은 군왕으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나. 명국과 청국 사이에 정세오판으로 자초한 병자호란… 슈퍼파워 미국과 굴기(崛起) 중국 사이에 국운을 건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오늘날의 대한민국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남한산성 행궁은 20곳에 달하는 조선 행궁(왕의 임시거처) 중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거느린 유일한 행궁이다. 유사 시 임시수도 역할을 수행했던 곳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는 사직을 모신 우실(右室)은 없고,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左殿)만 남아 있다. 2천원의 입장료 때문인지 산성길에 비해 행궁을 둘러보는 탐방객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번은 인조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청군의 침입을 알려주어 한때나마 그 선발대를 물리칠 수 있었기에 인조 16년(1638)에 사당(온조왕사)을 짓고 백제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셨다. 뒷날 이번에는 정조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정조의 인품과 성업을 칭찬하면서 혼자 있기가 쓸쓸하니 죽은 사람 중에서 명망있는 신하를 같이 있게 해달라고 청하기에… 정조 19년(1795)에 남한산성 축성 당시 총책임자로서 병자호란 때 전사한 총융사 이서(李曙) 장군의 위패를 함께 배향하면서 숭렬전(崇烈殿)이라 사액했다.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4년 6월에는 숭렬전에서 우리나라 11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인증서 봉헌 행사가 거행되었다.



장대(將臺)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은 장대가 수어장대다. 성 안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서쪽에 있는 장대)라 부르던 것을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2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守禦將臺)라는 현판을 달았다. 수어장대 2층 내부에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볼모로 심양(沈陽)에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청국에 대한 복수심으로 북벌을 꾀하다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후세에 전하고 그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다. 영조와 정조는 효종의 능소인 여주 영릉에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 장대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면서 병자호란 때의 치욕사를 되새겼다고 전한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 투성이인 요즘인지라 새삼 새로운 ‘무망’이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에서는 수어청(守禦廳)의 장군으로 수어사 이시백(李時白)이 등장한다. 병자호란의 국치에 대한 반감으로 창작된 「박씨부인전」에서는 피화당주(避禍堂主) 朴氏의 배필로 한자가 다른 이시백(李始白)이 조연으로 나온다.
수어장대에서 서문(右翼門)으로 내려가는 순성길가에는 “공원에서는 노점 상행위를 할 수 없다”는 펼침막 옆에서 버젓이 막걸리와 이런저런 주전부리 등 주효(酒肴)를 차려놓고 장사를 하는 노점상이 곳곳에 산재했으나 단속 공무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시민성이라는 개념은 요원하기만 하다.

2014년 11월 1일 토요일

시선 잡는 바람난 미술 작품

요사이 서울 시민청 지하 1층 시민프라자에 가면 ‘아트 캠페인-바람난 미술’ 전시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된 70여 작품 중에 시선을 잡은 두 작품을 찍어 봤다.


입시설명회장을 표현한 이경현의 아크릴릭 ‘집중’(Concentrate)이라는 작품이다.
입시정보를 입수하려는 학부형과 수험생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벌써부터 경쟁하는 팽팽한 긴장감과 입추의 여지없이 꽉 채워진 공간, 불안감으로 도배된 뜨거운 열기… 한번이라도 입시설명회에 참석해 본 사람은 그 엄숙하면서도 심란한 분위기를 알 것이다.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지원해야 유리할 지 불안한 얼굴로 열심히 경청하고 메모하는 현장의 집중된 모습을 잘 표현해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환한 색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최요한의 디지털 프린트 ‘미(美)완성 인간’(Incomplete human).
어두(魚頭)와 진주(眞珠)의 부조화스런 결합이 오히려 강렬하다.
목욕할 생각은 하지 않고 향수만 뿌려대는 근대 서양의 귀부인을 묘사한 듯한 어색함이 불편하다. 생선머리와 진주목걸이의 묘한 엉킴과 색감이 비린내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