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1일 수요일

하정산악회 10주년 기념행사

지난 주말… 정찬남 교수님 소개로 전라도 강진 월출산 등산대회에 참가했다.
월출산 기찬랜드를 경유하여 금릉경포대에서 섹소폰 연주를 감상하며 시원한 계곡물에 발담그고 한가롭게 소일하는 시간.


점심 때 진주식당의 토하젓과 저녁 때 동락식당에서 맛본 영암명물 짱뚱어탕은 정말 별미였다.


모산리 선향관에서 1박을 하며 하정산악회 창립 10주년 포럼행사를 참관했다. 참여정부 때 인사수석을 지낸 정찬용님도 하동 정씨 평정사공 장령공파 28세손으로 함께 하셨다.


모산사 앞 공터에서 캠프화이어도 즐기고, 다음날 월지사에서 정찬남 교수님과 한 컷~!! 정찬남 교수님은 문선공 정인지의 직계후손이라고 한다.
혹시나 UFC에서 활약하고 있는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가 하동정씨 일문이고 ‘찬’자 항열이라면 정찬남 교수님의 동생뻘이 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해봤다.


경렬공(정지), 문성공(정인지), 장령공, 모암공, 충장공(정운) 같은 하동정씨의 조상님들의 일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2013년 7월 30일 화요일

영팔정 & 아천미술관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403번지에 소재한 영팔정(詠八亭)은 조선초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하정 유관(夏亭 柳寬 1346~1433)이 모산리의 지세와 경관이 좋아 세거지(世居地)로 택하고 그의 아들 맹문(孟聞)에게 명하여 1406년(태종 6)에 건립한 정자이다.
초창 당시 정자의 이름은 나주목사 유두명이 마을 이름인 모산의 모(茅)자와 유관의 호인 하정의 정(亭)를 따서 모정(茅亭)이라고 하였다. 그 후 율곡 이이(1536~1584)가 이곳에 와서 유관의 학덕을 기리면서 주변 경관을 팔경시(八景詩)로 읊었으며, 그 뒤에 고경명·남이공·유상운 등이 팔경시를 연작하였던 곳이라 하여 영팔정(詠八亭)으로 바뀌었다.
숙종 15년(1689)에 영의정을 지낸 유상운이 건물을 고친 것 외에는 수리한 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정자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내부는 방이나 벽체없이 사방이 개방된 정사각형 평면이며,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오른쪽에만 난간을 설치하였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팔정과 직접 관련된 유물로는 정자 내부에 보관된 제영(題詠), 기문현판(記文懸板)과 동계책(洞契冊)이 있다. 영팔정은 조선 초기에 건립된  정자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며, 사정(社亭)으로서 역할은 물론 강학 장소, 향약 집합소로도 이용되어 마을민의 구심체가 되었던 곳이다. 또한 현존하는 모산동약(茅亭洞約)은 지방사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주목된다. 현판은 남구만(1629~1711)의 글씨이다.
영팔정 앞쪽의 수령 480년 된 느티나무와 뒤편의 분비재(憤悱齋)가 그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주춧돌이 매우 올라가 있다.


영팔정·분비재와 조각공원(문화광장)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아천미술관의 아름다운 전경.
독립운동가 우석(友石) 유혁(柳赫 1892∼1966) 선생의 옥중서신 등을 보관하기 위해 문화유씨 일가에서 미술관을 꾸몄다고 한다.


적색 얼룩말과 황색 하이에나 그리고 백마… 이밖에도 10여점의 조각품이 잘 꾸며진 조경과 조화롭게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하면 단순히 실내에 걸려있는 그림만 관람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일깨우는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한계원 조각가의 이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헌데, 미처 기록하지 못해 제목을 모르겠다.

 

2013년 7월 29일 월요일

강진 월출산 무위사

월출산(月出山)의 남쪽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무위사(無爲寺)는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무위사는 10세기 초 선각대사 형미와 관련되어 규모가 확장되었다. 이후 조선 초에는 자복사(資福寺: 나라의 복을 기원하는 절)와 수륙사(水陸社)로 지정되었다.


「무위사사적」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617) 원효대사가 창건한 관음사에서 시작되었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무위사라는 절이름은 선각대사탑비에 나타난다. 무위지위(無爲之爲: 하지 않지만 하는 것)의 약자인 무위는 내(我)가 있다는 생각을 넘어선 무아와 무욕의 경지에서 성취되는 법(道)이다.


무위사의 역사는 선각대사 형미(逈微)스님이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위사는 고려 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륙사로서 유명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水陸齋)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 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국보 13호)이다.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건축이 드문 상황에서 당시의 조각과 벽화를 보존하고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극락보전으로, 조선 세종 12년(1430)에 건립되었으며,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교 건축물 중에서도 초기 형태에 속한다. 눈여겨 볼 것은 고려시대의 영향을 받은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이다.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 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놓쳐서는 안 될 감상 포인트이다. 또한 단정하고 검소한 극락보전의 겉모습과 달리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건물 내부는 물론,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상과 불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건물 안에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아미타불, 관음, 지장보살의 아미타삼존불 조각이 모셔져 있다. 불상의 뒤편에 해당하는 벽면의 앞·뒷면에는 1476년에 제작된 아미타삼존과 관음보살도가 장엄되어 있다(보물 1313호). 동서 측벽과 주변에도 벽화가 있었으나 현재 별도로 보존하고 있다.


무위사의 가장 오랜 유물은 선각대사편광영탑비(보물 507호)이다. 그 주인공 선각대사 형미스님(864~917)은 가지산 보림사 체징의 제자로 당에서 귀국한 후에 무위사에서 주지로 8년간 머무르며 무위사 중창을 주도하였다. 친왕건 세력이었던 그는 궁예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며, 고려의 태조가 된 왕건이 그에게 선각대사라는 시호와 편광의 탑명을 내렸다.
탑비는 거북 받침돌과 몸돌, 머릿돌을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이다(높이 250㎝). 거북 받침돌과 운용문이 있는 머릿돌에 표현된 조각 수법은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
몸돌 앞면에는 형미스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최언위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글씨를 썼다.
현재의 부도비는 정종 원년(946)에 세워졌고, 삼층석탑 또한 이 시기의 유물이다.


탑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무위사 3층석탑은 현재 극락전 우측인 선각대사편광탑비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탑의 구조는 전형적인 2층 기단을 갖춘 3층 석탑으로서 각 부재가 잘 조화되고 균형이 잡힌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이다.
이 석탑의 조성연대는 선각대사편광탑비의 연대와 동시대이거나 그 연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려시대 초반기로 추정된다.
지대석은 몇 개의 넓은 돌로 짜여져 있고, 그 위헤 각형 2단의 괴임대와 하대기단 중석이 연결되고 있는데 각 구를 2구로 나누고 중앙에는 탱주(가운데기둥) 1주와 양면에는 우주(모서리기둥)를 조각하였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지붕돌)이 각 1석씩으로 탑신부의 양면에 우주가 모각되고 2~3층에서는 그 높이와 폭을 줄여 알맞은 체감을 보였다.상륜부(탑의 꼭대기 부분)는 완전하게 남아있다.
무위사 3층석탑은 비교적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충실히 고수하고 있다.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보물 1315호)는… 1974년 극락보전을 보수하면서 벽면의 벽화들을 원형대로 뜯어내어 보존한 것이며 아미타내영도, 석가여래설법도, 휙휙 그려낸 너울과 옷자락이 멋있는 해수관음좌상도, 보살좌상도, 오불도,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비천선인도 등 29점이 보물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이중 아미타내영도는 흙벽에 채색된 것으로 사람이 죽을 때나 수행이 성숙해지면 아미타불이 마중와서 서방극락으로 인도해 간다는 내용을 도상화한 것으로 아미타불과 8보살 8비구가 구름 위에서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왕생자를 맞이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과감할 정도로 밝고 엷은 적색과 녹색 등 고려불화의 양식이 짙게 나타나있는 반면, 화면에 나한이 등장하는 등 세부묘사에서 조선초의 새로운 양식이 표현되어 있다.
현재 극락전 좌우 벽면에 그려진 아미타내영도와 설법도 등 2점은 모사본이며 원본은 전시관 내에 보존되어 있다.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한·중 컨버전스 21

2013년 7월 25일… 19차 평생교육사 모임은 지난주에 이어 이원엽 교수님의 중국 특강 「한중 컨버젼스 21, 同舟共济는 가능한가?」로 진행됐다.
우선, 2000년이 넘는 한·중 양국의 교류사에서…
고대·근대·현대의 몇몇 중요한 사건을 예시하고 한반도 현주소의 문제점 및 21세기 한·중 관계를 짚어보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동북변강의 역사와 현상에 대한 연속 연구공정’(이하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중국 사회과학원과 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 등 동북 지방 3성이 연합하여 추진하는 국책사업으로 2002년 2월 28일에 시작되었다.
중국 동북공정의 억지 주장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조선 부분>

“고구려·부여·예맥·발해는 고조선 이래로 이어지는 고대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 중국 정사(正史)에도 언급된 바 없는, 갑자기 대두한 주장이다.

“한반도 남부의 진국은 은나라의 속지였다.”
⇒ 은나라 멸망 후 9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진국이 문헌상에 등장한다.

“단군신화는 중국 신화의 영향을 받은 허구이며 기자조선에서 한반도의 역사가 비롯됐다.”
⇒ 「산해경」이나 「주역」 등을 음운론 등으로 꿰어맞춘 해석이다.

<고구려 부분>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 중국이 한나라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고구려와 주몽이 부여 졸본 땅에 건국한 고구려는 이름만 같은 뿐 전혀 다른 나라다.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
⇒ 70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존속했던 고구려가 35개 나라가 이합집산했던 중국에 줄곧 종속될 수 있었을까.

“고구려 멸망 뒤 고구려인 대부분이 중국으로 들어갔다.”
⇒ 고구려인 대부분은 고구려 옛 땅에 남아있었다. 이후 발해 건국의 주역이 됐다.

<발해 부분>

“발해의 처음 국호는 ‘말갈(靺鞨)’이다.”
⇒ 처음 국호는 진(震)이다. 말갈은 당나라에서 고구려 변방주민을 낮추어 부르던 비칭(卑稱)이다. 이를 국호로 삼겠는가.

<조선 부분>

“명나라 이후 압록강과 두만강이 조선과 중국의 국경이었다.”
⇒ 명나라의 군사력은 두만강까지 전혀 미치지 못했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 이후 중국 당국은 조선족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며, 조선족들의 정체성에 대해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원엽 교수님은 작금의 한국을 둘러싼 몇가지 주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ㆍ민족문제: 조선족과 화교, 동북3성의 한국인 고아
ㆍ역사인식: 동북공정 & 서북공정
ㆍ현실문제: 북한 그리고 북한 핵, 탈북자
ㆍ주한미군 주둔과 중국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역사 속의 한중 관계를 살펴보면 과거에는 안보와 경제 모두를 중국에 의존했지만, 현재는 안보 분야는 미국, 상대적으로 경제 분야는 중국에 기대고 있는 형국인데…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원친불여근린 远亲不如近邻)는 말을 한번쯤 곱씹어 볼 필요도 있다.


임연선어 불여 퇴이결망(临渊羡鱼 不如 退而结网)
‘못에서 물고기만 탐내는 것 보다는 물러나서 그물을 뜨는 것이 더 낫다.’
즉, 언덕에 서서 다른 사람이 못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되돌아가서 그물을 짜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다.
이는 어떤 일을 해내려고 할 때, 반드시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실용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회차에 걸쳐 무려 260분간을 쉼없이 열강해 주신 이원엽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해올린다.

2013년 7월 24일 수요일

차이나 매뉴얼

평생교육사 18차 모임은, 중국의 실용적인 지식과 이해를 돕기 위한 프로세스로… 체면ㆍ인간관계ㆍ식사초대ㆍ사업ㆍ중앙ㆍ지방ㆍ개혁·개방ㆍ공산당 등 8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현대 중국인의 인간관계를 해석해 보는 시간으로 이원엽 교수님이 강의해 주셨다.



keyword 1. 체면(미엔즈面子 = 体面)

체면(体面)은 얼굴(미엔즈面子)이라는 뜻이다. 중국어로 얼굴을 면자(面子)라고 하고 이것을 해석하면 ‘체면’이라고 말한다. 얼굴은 신체를 대표하는 상징이므로 얼굴 그 자체를 체면(体面)이라고 표현한다.

유면자(有面子): 기본적 체면이 있는 상태
몰면자(沒面子): 체면이 없는 상태, 면목이 없는 상태
주면자(做面子): 체면을 만들어 차리는 것
급면자(給面子):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
매면자(賣面子): 다른 사람의 체면을 빌려서 부탁을 하는 것



keyword 2. 인간관계(꽌시關系 = 关系)

체면의 실제적인 활용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중국인의 인간관계는… 대인관계 속에서의 나(我)와 나를 중심으로 군체(群體)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중국에서는 개인이 속한 군체를 ‘가(家)’의 개념으로 정리한다. (家)는 군체 개념의 핵심이며, ‘인간관계’의 기본 코드이다.

ㆍ자가인(自家人): 자기(집)사람
ㆍ인가(人家): 다른 사람
ㆍ대가(大家): 모든 사람을 가르킬 때
ㆍ김가(金家): 김씨 집 사람
ㆍ이가(李家): 이씨 집 사람
ㆍ하는 일에 따라 정치가(政治家), 소설가(小說家)
ㆍ유교를 유가(儒家)로, 불교를 불가(佛家)로, 나라를 국가(國家)라고 하듯 모든 것을 집(家)을 분모로 하여 나눈다.

중국인들의 인위적인 혈연관계, 즉 특수한 인간관계는…
ㆍ수직관계: 건乾(=干)爸
ㆍ수평관계: 의형제  ex. 도원결의(桃園結義)
ㆍ인간관계 발전: 新朋友 → 老朋友→兄弟→ 哥们 → 铁哥们 → 自己人



keyword 3. 식사초대(칭커請客 = 请客)

『한서(漢書)』에 따르면 백성들의 하늘은 왕이 아니라 먹을 것(식량)이다. 창고가 가득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도 있다.

중국인과의 교제는 이유나 목적이 어떻든 식사에서 시작된다. 체면이 서고 관계가 형성되면 그 다음은 식사 초대로 이어진다. 식사 초대는 최고의 호의이므로 반드시 받아들이는 것이 예의이다.
다른 강사분들하고 다르게 이원엽 교수님은 강의 시작 전에 우리가 준비한 김밥을 함께 나누어 드시고 강의를 시작하셨는데… 오랜 기간 중국에서 생활한 관계로 ‘어느 고장에 가면 그 고장의 풍속을 따른다’는 입향수속(入鄕隨俗)의 습관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술과 담배는 네 것 내 것이 없다(烟酒不分家)는 말처럼… 공유와 소속감을 위해 돌려 피우는 담배나, 술잔이 조금만 비여도 잔을 채워주는 첨잔 등 우리와는 많이 다른 음주 흡연 문화에 유의해야 한다.

남북으로 다른 지방별 음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북방문화
남방문화
인사말 “어디에서 지내느냐” “돈 많이 벌었느냐”
손님초대 한 뒤 “오늘 제대로 한번 통쾌하게 먹었구먼”하고 자족 “설거지하는 게 걱정이군”
음주문화 큰 고깃덩어리에 큰 그릇으로 술을 마심 얇게 썬 고기에다 작은 잔의 술을 홀짝거리기 좋아함



keyword 4. 사업(生意 = )

식사를 같이 했으면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얘기가 나오게 되고, 서로의 셈(算) 법으로 수지를 맞추게 된다.

하(夏)나라를 이은 은(殷)나라는 B.C 11세기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멸망을 당했다. 전답을 몰수당한 은나라 사람들은 생산기반이 전무했으므로 장사로 생계를 이어야 했는데… 이로부터 자연스레 상인(商人)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었다.(3천년 전)

손자병법에는 ‘승산이 많으면 이기고, 승산이 적으면 진다’고 하여 이길 수 있는 전쟁을 강조했다.
‘사람의 계산이 하늘의 계산을 당해 내지 못한다(人不如天)’는 말처럼 중국인들의 계산은 늘 일상적이고 생활화되어 있다. 춘절(春節) 때도 공희발재(꽁시파차恭禧發財)라고 해서 “돈 많이 벌라”는 인사를 나눈다.
‘돈 버는 것’을 잠전(쫜첸賺錢)이라고 하는데 잠(賺)은 ‘속이다’, ‘속여서 비싸게 팔다’라는 뜻이므로 ‘돈을 번다’는 속인다는 것이고 이는 장사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산반(쏸판算盤)이라고 하는 주산 역시 송·원 시기에 발명되었다.

마음 속으로 계산하는 심산(신쏸心), 계산 완료와 양방간의 관계 끝을 뜻하는 산요(쏸러了), 사주팔자를 보거나 운명을 계산하는 산명(쏸밍命) 등 용어도 다양하다.

북방인이 남방에 가서 장사(사업)할 때는 ‘혹시 속지나 않을까’ 하면서 고민하고, 남방인이 북방에 올라와 장사할 때는 ‘혹시 잘못돼 맞지 않을까’ 하면서 걱정한다.




keyword 5. 중앙(中央)

정치 권력의 중앙 북경(베이징北京)
ㆍ고대 베이징: 농업 생산력의 발전으로 화북(華北)의 평야지대와 북방의 산간지대를 연결하는 교통 및 전략의 요충지로 발전 → 인구 증가
ㆍ연(燕)나라의 都邑
ㆍ진(秦)·한(漢) ~ 당(唐): 동북변방(東北邊方)의 정치·군사상의 요충지
ㆍ요(遼)나라: 938년에 부도(副都)로 삼음(南京)
ㆍ금(金)나라: 연경(燕京)으로 부르다가 1153년 천도(遷都) 후 중도(中都)라 명명
ㆍ몽골족이 남하하여 중도성(中都城)을 빼앗고 쿠빌라이(世祖) 때에 신성(新城)을 건설하고 국도로 정하여 대도(大都)라고 명명 → 원(元)나라의 수도
ㆍ명(明)나라 초기에 남경(난징南京)이 수도였다가 → 1420년 영락제(永樂帝)가 대도(大都)로 천도하면서 북경(베이징北京)이라 함
ㆍ1636년 청(淸)나라도 베이징을 수도, 여진족(제3대 황태극 황제 ‘만주족(滿洲族)’이라 개명)과 한족(漢族)의 거주 지역을 구분 → 내성(內城)에 만주족(滿洲族), 외성(外城)에 한족 거주
ㆍ1912년에 세워진 중화민국(中華民國)도 북경을 수도, 후에 남경(南京)으로 천도, 베이징을 한때 북평(北平)으로 호명
ㆍ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 건립후 북평에서 → 북경이라 고쳐 부르고 수도(首都)
ㆍ고대 봉건 왕조시대의 수도인 낙양(洛陽), 개봉(開封), 장안(長安), 임안(臨安) 등과 달리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살아있는 도시

경제 권력의 중심 상해(상하이上海) 직할시
ㆍ上海: 바다(海)로 나아가자(上)는 뜻
ㆍ현대화 도시 건설에 유리한 조건, 지리적으로는 양자강 하류에 위치하여 수상교통이 발달, 삼각주 지역으로 원자재와 노동력이 풍부하며 기후가 좋음
ㆍ소주(蘇州)와 항주(杭州)로 통하는 수로(水路)로 北京으로 가는 운하(運河)를 컨트롤
ㆍ서쪽의 기름진 평야. 근대화 발전의 초석. 1842년 영국과 아편전쟁 후에 南京條約 → 개항, 현대화
ㆍ근대 군벌과 외국인, 혁명 노동자가 활동 → 상업와 전통 농업이 서로 충돌과 융화
ㆍ한족(漢族)의 이주(移住)문화로 형성된 혼합형 도시→ 개방적


워낙에 내용이 방대하여 중국의 지방, 개혁·개방, 공산당 키워드는 다른 지면을 통해 정리할 생각이다.

 

2013년 7월 22일 월요일

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고 하는가?

(사)한국평생교육사협회 주관으로 7월 20일(토), 21일(일) 양일간 진행된 「협동조합운동 기본교육」.
신영복 선생님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집을 지을 때는 주춧돌부터 놓아야 한다. 처음부터 멋진 지붕을 그리는 것은 잘못된 만남이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궁극의 목적 “왜”가 가장 중요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굳이 시류에 휩쓸려 협동조합 형태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합자회사, 합명회사, 유한회사, 비영리단체 등등 어떤 형식으로든 “왜”라고 하는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조직을 설립하면 될 것이다.

특정 프레임에 갇힐 필요는 없지만, 몬드라곤의 기적은 말그대로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다. 기업은 이윤추구라는 굉장히 단순한 목적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협동조합 역시 일단 시장이라는 경쟁사회에서 치열한 몸부림으로 버티고 생존해야만 하기 때문에 조합원들 간의 소통과 연대의식 및 관련 공부는 필수로 요구된다. 그래야만 자본시장의 횡포에 맞서고 승자독식이나 과다이윤, 이중수탈을 견제할 수 있다.


또한 일부 전문가집단이나 정부부처에서는 협동조합에 대한 별도의 자금지원이 논의되고 있는 모양인데, 차라리 금융·보험 분야의 협동조합 설립의 길을 터주는 것이 유용하다고 본다.
전문성의 부족, 민주절차에 따른 의사결정의 지연, 벤처기업으로의 오인 등 무너뜨려야 할 환상도 무지 많다.


이번 우리의 강좌명이 왜 `협동조합 기본교육`이 아니라 `협동조합운동 기본교육`이었는지 참여자들은 알게 됐다.
경쟁력 확보를 통한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이를 이루기 위한 발기인 철학의 중요성… 시간을 두고 고민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자본주의의 미래(Future of Capitalism) 강좌

6월 18일(화)부터 7월 16일(화)까지 5회에 걸쳐 진행된 시민대학 2차 과정의 「자본주의의 미래」 강좌 수강을 마쳤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박사는 미래 예측에 대한 3가지 태도 중에서 성 어거스틴과 같이 ‘신의 섭리’를 내세우는 형이상학적·선험적 판단과, 과거의 경향을 미래에 투영하는 과학적 방법은 배제하고, 미래에 영향을 줄만한 몇가지 갈등 지점들을 포착하여 매커니즘을 파악하는 역사별 기법으로 강좌를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취했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놀라운 변신능력을 보여준 자본주의에 비해 자본주의에 대한 미래 예언들은 온전히 실현된 바가 없다.
스미스, 리카도, 마르크스, 베버, 케인즈, 슘페터와 같은 넘사벽들도 그럴진대 나 같은 범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다만, 그림에서 보듯이 금융과 산업, 경제와 사회, 산업사회와 생태 각 영역에 대한 모순과 갈등을 인지하고, 이것들을 어떻게 해결하는냐에 따라 자본주의의 미래가 결정될 거라는 점만을 분명하게 확인했을 뿐이다.


정상상태(stationary state), 울타리치기(enclosures),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 ; EMH), 붐 앤 버스트 사이클(boom & burst cycle), 임노동자(wage laborer), 허구적 상품(fictitious ommodity), 성장축소(de-growth), 캡 앤 트레이드(cap & trade), 비재화(bad), 앞으로 던지는 사람(projector), 오이디푸스 효과(oedipus effect), 자발적 가난(voluntary poverty)과 같은 개념들을 새로 배웠고…
영리 부문에 대한 사회의 반격과 그에 맞선 영리의 재반격, 기술발전에 선행돼야 하는 사회변화, 인간사회가 계속적인 기술발전을 주도할 수 있느냐의 논쟁 및 개인 욕망의 통제가 가능한가 등의 고차원적인 주제도 생각해 보게 되면서… 사회 교과서의 단골 주제인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은 그 자체가 형용모순임도 알게 됐다.

영리활동에 따라 산업이 조성되고, 산업에 의해 사회가 재구성되고 계속해서 생태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
창조·변혁 능력이 없음에도 뛰어난 적응능력 하나만으로 최대의 수익을 찾아 움직이는 자본시장…
앞으로 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기초 내공을 쌓았다는 것에 나름 만족하는 훌륭한 강의였다.

2013년 7월 14일 일요일

진관사 씨순길

7월 6일 지난주 토요일 오전. 처음 동참해 보는 씨알순례길…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모여 인사를 나누고 명찰 착용 후 인공분수 뒤편의 이말산 산책로를 따라 20분 정도 도보하여 통일정 쉼터에 도착. 이후 하나고등학교로 내려가는 갈림길까지 다시 20분 소요. 이말산에는 국토분단의 현실을 말해주는 참호가 곳곳에 패여 있고, 조선시대 내시묘도 다수 볼 수 있다.


하나고등학교에서 큰길을 건넌 후 북한산둘레길(효자동) 이정표를 지나 삼각산 진관사 입구 일주문까지 대략 15분이 소요된다.
진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사찰로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히는 수륙도량으로 이름난 사찰이다.


큰 사찰에는 대개 부처님을 대웅전 밖에서 호위하는 사천왕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래 사진처럼 금강역사가 대신하기도 한단다.


진관사 종무국의 안내에 따라 공양실에서 담백한 점심공양 후, 홍제루에 올라 저수삼배로 교육담당 비구니 스님을 맞이하여 진관사(津寬寺)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태조 왕건의 손녀인 황보씨의 두 자매는 모두 사촌오빠인 5대 경종에게 출가하여 헌애왕후, 헌정왕후가 된다. 재위 6년만에 경종이 승하하자 두살짜리 어린 왕자 왕송을 대신하여 자매들의 친오빠인 왕치가 왕위를 이어 6대 성종이 된다. 16년 재위 동안 후사 없이 성종이 붕어하자 경종과 헌애왕후의 아들인 왕송이 7대 목종에 오르고, 헌애왕후는 천후태후가 되어 수렴청정을 통해 성종의 유교 정책과 거란에 대한 사대정책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 이러한 정치격변 와중에 동생 헌정왕후와 태조의 아들인 왕욱 사이에서 태어난 대량원군 왕순이 왕위 계승자로 봉해진다. 태후는 성종년간에 김치양과 정을 통해 몰래 낳은 사생아를 옹립하기 위해 조카인 대량원군을 죽이려 하였으나 진관대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 왕순은 1009년 강조의 변을 통해 8대 현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현종은 진관대사(津寬大師)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1011년 크게 절을 세우고, 진관사(津寬寺)라 명하였으며, 그 후 마을 이름도 진관동이라 부르게 됐다.
한국전쟁 중에 북한군의 중간집결지로 사용됐던 진관사는 유엔군의 폭격으로 칠성각과 나한전 등 3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1963년 현 회주이신 비구니 진관(崔眞觀)스님이 발원하여 건물을 차례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진관사는 현재 비구니스님들만의 수행정진 사찰이다.


동입서출의 원칙에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홍제루 ⇒ 나한전 ⇒ 칠성각 ⇒ 독성전 ⇒ 명부전 ⇒ 대웅전 ⇒ 동정각 순으로
진관사 경내를 탐방해 나갔다.

임금을 기다리다가 지쳐 죽은 소화 궁녀의 혼백이 피워낸 꽃이라 하여 능소화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나무. 꽃말은 슬픈 전설과는 어울리지 않게 ‘명예’다.
나한전에는 영산회상도, 십육나한도, 소 삼존불상, 십육나한상이 있다.
칠성각은  그 이름 자체가 무속과 결부된 한국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칠성도, 석불좌상, 명호스님 초상이 있다.


칠성각에서 발견된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사료
2009년 5월,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던 중 백초월(白初月, 1878~1944) 스님의 1919년 당시 항일운동을 대변해주는 태극기와 귀중한 독립운동사료들이 발견되었다. 독립신문, 신대한신문을 비롯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태극기에 싸여 있는 상태로 불단 안쪽 기둥 사이에 90년 동안 비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2010년 정부에서는 총 6종 20점에 이르는 이 사료들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진관사 태극기> 특별전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또한 KBS 1TV 3·1절 특집극으로 <초월의 비장, 진관사 태극기>가 방영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진관사와 학계는 백초월 스님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두 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당시 진관사가 경성 지역 불교독립운동의 근거지였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현재 진관사에서는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초월 스님은 일제 강점기 불교계의 대강백(大講伯)이자 만해 한용운 스님과 비견되는 대표적인 항일 승려이다. 스님은 1919년 3·1운동 이후 진관사에 주석하면서 평생을 독립을 위해 정진하다가 1945년 6월 조국광복을 불과 두달 앞두고 일제의 모진 고문에 의해 청주교도소에서 법납 53세, 세수 67세로 옥사 순국하셨다.


독성전에는 소 독성상, 독성도, 산신도가 있다. 독성은 나반존자를 이른다.
명부전은 저승정부를 뜻하는데… 머리 부분이 특이한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다.
진관사 대웅전(큰 영웅이 계시는 궁전)에는 과거불인 정광불이 화한 제화갈라보살상, 현재불인 석가여래불상, 미래불인 미륵불이 화한 미륵보살상 등의 삼존불상이 차례로 모셔져 있다.


동정각에 걸려 있는 높이 160㎝, 구경 91㎝, 300관의 대형범종은 1974년에 진관 회주가 조성하였다.


홍제각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수려한 모습. 교관겸수·돈오점수·정혜쌍수… 이런 곳에서 수양하면 불법이 저절로 쌓여질 법도 하다.


1968년 1.21사태 무장공비 침투로
이 침투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기습과 대통령 암살을 위해 침투했던 주요 이동통로이다. 중무장한 공비들은 경기도 연천군 휴전선 철책을 뚫고 시간당 평균 10㎞씩 주파하면서 파평산, 노고산, 앵무봉을 차례로 지나 이곳 진관사 계곡까지 침입하였으며, 인적과 추위를 피해 바위동굴에서 은신,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이동하였다. 마지막 공격캠프인 사모바위 앞 동굴에서 최종목표지점 점검을 하고 종로구 세검정길을 통해 청와대로 접근하던 중 세검정 고개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교전이 발생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군·경 및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무장공비 침투로로 이용되었던 북한산 진관계곡 탐방로는 분단된 조국의 가슴 아픈 역사의 한 길목이기도 하다.

진관계곡 사슴집에서 21명의 참가자가 모여 막걸리 파티로 7월 씨순길을 마감했다.

모임을 준비하고 이끌어 주신 김승주 선생님이 많이 애써 주셨습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감탄사를 불러온 이재섭 선생님께 새로이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이라는 건물 지식도 배웠습니다.
한겨레신문 이주형 선생님의 <가시연꽃>·<무궁화> 시낭송… 감명 깊게 음미했습니다.
초록낙타 김낙영 대표님의 장편시 <조국>은… 읽는 내내 울분으로 답답했습니다. 사진 엽서…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HAPI 미디어 이웅립 선생님, 민락재단 김길수 상무님, 이창희 작가님, 함인숙 목사님, 함께 하신 모든 선생님들… 만나봬서 반갑고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2013년 7월 13일 토요일

2014 수시/정시 맞춤 전략 설명회

6월 모평이 끝난 이후 이를 바탕으로 이곳저곳에서 본격적으로 `2014 대학 입시 설명회`가 개최되는 형국이다.
지난 7월 11일 중계평생학습관에서 진행된 `2014학년도 대학입시 성공 지원 전략` 설명회에 참석했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의 입시 간담회 자리다.


현장에서 입시전문가 유성룡 소장이 제시한 지원 전략 내용들을 배부된 자료집을 참조하여 아래에 요약 정리했다.

⊙ 2014학년도 입학전형의 주요 특징 - 수시 모집 지원 기회가 6회로 제한
① 6번의 지원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른 변수가 많은 입시가 될 것임
② 6번의 지원 기회는 1차와 2차로 나누어 찾는 것보다는 전형 유형(학생부·논술·면접·특기 등)을 구분하여 찾는 것이 좋음
③ 소신 2번에 상향 4번이 보편적인 기준임. 하지만, 꼭 수시 모집으로 가야만 할 상황이라면 하향 1번, 소신 3번, 상향 2번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음

⊙ 중위권(수능 국수영 등급 합 5~6등급) 전략
ㆍ연세대 1회 + 고려대 1회 + 성균관대/서강대/한양대/중앙대 등에서 2회 + 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건국대/동국대 등에서 2회
ㆍ연세대/고려대 1회 + 성균관대/서강대/한양대/중앙대/이화여대 등에서 3회 + 경희대/외국어대/서울시립대/건국대 등에서 2회 + 동국대/홍익대 등에서 1회

⊙ 중하위권(수능 국수영 등급 합 6등급 이하) 전략
ㆍ한양대 1회 + 중앙대 1회 + 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건국대 등에서 2회 + 동국대/홍익대/숙명여대/숭실대/국민대 등에서 2회
ㆍ한양대/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건국대 등에서 3회 + 동국대/홍익대/숙명여대/국민대 등에서 2회 + 단국대(죽전)/광운대/세종대/아주대/인하대/덕성여대 등에서 1회

⊙ 수능시험이 A/B형의 변경
수능과목
계열
특성
기초영역
국어
A형
자연
계열별
시험
B형
인문
수학
A형
인문
B형
자연
영어
A형
쉬움
수준별
시험
B형
어려움
 
탐구
(사회·과학·직업 중 택1)
사회(10과목 중 택2)
인문
계열별
시험
과학(8과목 중 택2)
자연
직업(5과목 중 택1)
특성화
제2외국어/한문 영역(9과목 중 택1)
인문
 

⊙ 수시 지원 전략을 세울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① 자신에게 맞는 전형 유형을 찾아라.
② 대학별 전형 자료와 요소별 반영 비율을 숙지하라.
③ 대학별 당락 비중이 높은 전형 요소와 자신의 실력을 검증하라.
④ 수능시험 최저 학력 기준을 정확히 숙지하라.
⑤ 입학원서 접수 마감일과 대학별 전형일을 확인하라.
⑥ 정시 모집 지원도 염두에 두라.

⊙ 정시 지원 전략을 세울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① 특기와 적성, 장래희망 등에 맞는 학과/전공을 선택하고, 개설 대학을 파악하라.
② 희망 학과/전공과 대학에서 실시하는 전형 유형을 파악하라. 특히 농어촌 지역 학생들은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실시 대학을 알아보라.
③ 대학별 학생 선발 전형 요소를 비교 분석하라. 특히 수능시험 영역별 반영 비율을 정확히 숙지하라.
④ 수능 가채점 결과에 의존하지 말라.
⑤ 수능시험 유불리를 파악하라.

⊙ 기타 참고사항
① 중위권 대학의 경우 국영수사(또는 국영수과)가 적어도 평균 2.5등급 내외는 되어야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지원이 가능하다. 다만, 논술 등 대학별고사에 자신이 있거나, 입학사정관제 등 특별 전형에 충분한 지원 조건을 갖추었다면 조금 내려갈 수 있지만, 그래도 3등급 내외는 되어야 한다.
② 중상위권 대학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 `먼저 선발한다`는 의미의 우선선발은, 정시 모집인 경우에는 수능 우선선발을 의미하며, 수시 모집에서는 논술 우선선발과 학생부 우선선발 등을 실시하는 대학이 적지 않다.
③ 비교과 영역(교내외 수상 경력, 봉사활동 시간, 계발 활동 등)에서 우수하다는 것만으로는 인서울 대학에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합격하기는 어렵다. 일반계고등학교의 경우 학생부 교과성적이 1·2등급은 되어야 한다.
④ 내신이 6~7등급 이하인 경우, 지난 해 수시 모집부터 지원 기회가 6회로 제한됨에 따라 추가 합격을 바라보고 수시 지원할 수는 있으므로 지방 위주로 고려해 봐야 한다.
⑤ 가톨릭대, 강원대, 경기대, 명지대, 가천대 등 대학 자체적으로 적성고사를 실시하는 28개  대학의 커트라인은 최소 80점 이상은 받아야 한다. 다만, 문제의 수준이나 난이도 등에서 차이가 크므로, 전년도에 몇 점이었으니까 올해에도 몇 점이라고 단언하고 비교하기는 힘들다.
⑥ 수능시험 성적 4~5등급인 중하위권 학생들도 최소 2개 영역 이상 3등급은 되어야 논술고사를 보는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만약 수능시험 최저 학력 기준을 충족하기 힘들다면 적성고사를 실시하는 대학으로의 지원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적성고사에도 자신이 없다면 수능시험 대비에 올인하여 정시 모집에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


역시 전문가다운 분석이어서 많은 도움이 될 거 같다. 유성룡 소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화타오금희(華陀五禽戱)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화타(華陀)가 등장하는 장면은 대략 세 군데 정도 된다.

장면 1
강동의 소패왕이라 일컬어지고 있던 손책은 그의 강성해짐을 두려워한 조조에 호응한 허공의 자객에 의해 중상을 입게 된다. 손책을 치료하기 위해서 명의 화타(華陀)를 초빙하였으나 마침 출타중이어서 그의 제자의 진료를 받고 회복하는 와중에 우길선인을 처형하고 노기로 인한 독의 재발로 26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이후 손책의 아우 손권의 시대가 개막한다.

장면 2
형주를 수비하고 있던 운장 관우는 조인의 독화살을 맞고 명의 화타의 외과 수술을 받게 되는데, 술상을 내오게 하여 자신도 마시고 화타에게도 권하는 한편 마량과 함께 오목을 두기 시작한다. 살을 째고 칼날로 뼈를 긁어 독을 제거하는 대수술에도 태연하게 진료에 임하는 관우의 모습에 화타는 감탄하게 된다.
참고로 천하의 명의 화타가 관우를 치료했다는 이야기는 정사(正史)인 진수의 『삼국지』에는 실려있지 않으므로 허구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장면 3
말년에 병이 깊어진 조조는 명의 화타를 부르지만, 수술방법(도끼로 머리를 쪼개 두골에서 풍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의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가 결국 처형하고 만다. 화타는 처형당하기 전에 친절한 옥졸 오압옥에게 자신의 의술을 집대성한 「청낭서」를 넘겨주는데, 오압옥의 아내는 남편이 뛰어난 의술로 인하여 장차 험한 꼴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아궁이에 넣어 태우는 바람에 화타의 신비한 의술은 부전하게 된다. 화타의 처형 이후 조조는 병세가 악화되어 변씨 소생의 큰아들 조비에게 위왕 자리를 잇게 하고 62세의 나이로 드라마틱한 생을 마감(220년)한다.

평생교육사 17차 모임의 메인 프로그램은 화타오금희의 시연으로 진행되었다.



화타오금희(華陀五禽戱)… 다섯 날짐승의 놀음(유희)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오금희는 후한시대의 의성 화타가 호랑이·곰·원숭이·사슴·새(虎, 熊, 猿, 鹿, 鳥) 다섯 동물의 운동 형태와 특징을 인체 생리에 절묘하게 귀납하여 AD. 110년에 창시한 도인술이라고 한다.
삼국지연의를 통해 본 화타는 뛰어난 의술과 양생술의 대가이며 사사로운 명예에 초연하고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높은 인격을 지닌 인물로 그려졌다.


조용희 선생님의 시연 후 오금희 초반부의 예비공 동작만 따라했는데도 호흡이 시원해지고, 뻐근했던 관절이 풀리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2013년 7월 9일 화요일

변혁의 리더십

16차 평생교육사 모임…
구은미 코치의 ‘변혁의 리더십’ 강의시간.


◆ 의도 매트릭스(intention matrix)
정신 ⇒ 환경 ⇒ 일 ⇒ 경험 ⇒ 육체 ⇒ 능력과 기술 ⇒ 관계 ⇒ 성과


◆ 우리의 Want를 위한 5단계 질문
① 당신의 사명은 무엇인가?
② 당신의 클라이언트는 누구인가?
③ 클라이언트가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④ 우리의 결과는 무엇인가?
⑤ 우리의 계획은 무엇인가?


코칭의 분야(목적)별 분류 중 변혁적 리더십 코칭은 마인드와 생각의 전환, 창의와 혁신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존재 찾기’ 시간이 흥미로웠지만 그리고 초보자가 전문 코치를 평가한다는 게 어색하기는 하지만, 과연 오늘 강의로 변혁의 리더십이 얼마나 고양됐을까에는 강한 의구심이 남는다.


퇴근 무렵의 러시아워를 고려한다면 좀 일찍 서둘러야 했다. 첫 시작부터 라포 형성이나 커뮤니케이션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는 느낌이다. 지속적인 훈련을 통한 자기화~!! 쉬운 일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