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8일 일요일

남원기행

마르타 누나, 랄프 형과 함께 처음 걸어본 남원 지리산 둘레길 여정에 대한 간단 후기 메모.



최초 행선지는 교룡산성. 백제시대에 축조되었고, 조선조에 몇번의 증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동학농민군의 은신처이기도 했다고.



선국사는 7세기 후반 신문왕 때 최초로 지어졌다고. 대웅전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데, 내부에 큰 북이 하나 걸려있더군. 대웅전 옆의 배롱나무 몸통을 간지럽혔더니 꽃잎과 이파리가 하늘거린다.



교룡산성 둘레길을 걷다 만나게 된 물까치. 부상을 당했는지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제대로 날지를 못했다.



길 한가운데서 맞닥뜨린 두꺼비. 대략 12㎝ 정도 되는 놈인데, 이렇게 큰 두꺼비는 처음 본다. 황소개구리도 조르기 한판으로 물리친다는 녀석의 포스는 과연 「두껍전」의 상좌를 꿰찰만 하더군. 혹시나 로드킬을 당할까보아 길 한쪽으로 몰았더니 볼과 몸에 잔뜩 공기를 불어넣고 마뜩잖해 한다. 전설 속 은혜를 갚는 신령스런 동물.



갈림길에서의 선택…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났을 때, 어느 길로 갈 것인가의 선택은 피할 수 없다. 선택을 회피하고자 할 때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지만, 그 또한 하나의 선택일 터. 삶의 과정은 어차피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문제는 어떤 이유와 근거 위에서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선택을 해 나갈 것이냐이겠지.



만복사는 전라도 남원부에 있었던 절. 때문에 ‘만복사’가 아닌 ‘만복사지’이다. 김시습의 전기소설(傳奇小說) 『금오신화』 속 「만복사저포기」는 주인공인 노총각 양생(梁生)이 만복사에서 부처님에게 아름다운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발원하여 3년전에 죽은 최낭자를 만나 로맨스를 나누는 줄거리의 명혼소설(冥婚小說)이다.
萬福이라 이름했건만, 이제는 함께 저포를 놀아줄 부처님이 보이질 않는구나.



당랑권의 대가 맨티스. 8㎝ 쯤 되어 보이는 사마귀가 시식하는 모습을 포착. 장수말벌 정도는 돼야 이놈을 상대할 수 있을듯.



가운데 잠자리처럼 생긴 놈이 ‘동충하초’란다. 무슨 동방불패도 아니고 어떻게 식물과 동물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까나.



배넘이재…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알겠더군.



예뻐서 찍어본 버섯 무리. 실제는 더 노랗다. DSLR은 아니지만 그래도 촬영기술이 너무 아쉽군.



흔히 볼 수 없는 무슨 꽃이라고 들었는데 그새 잊어먹었군. 이눔의 기억력이란…



속리산 정이품송을 연상시키는 당산 소나무의 멋진 자태.
첫날은 남원 위주로 11㎞, 이튿날엔 인월 근교로 7㎞ 해서 지리산 북서쪽 방면을 대략 20㎞ 가까이 걸었네. 시월엔 광한루, 혼불문학관, 실상사, 뱀사골 쪽으로도 한번 도전해 봐야지.
멀쩡한 근무시간에 벌건 얼굴에다 술냄새까지 풍기는 관리사무소 공무원 아저씨나, 공공재인 휴식공간마다 좌판을 벌여놓고 거침없이 장삿속을 드러내는 아줌씨들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지.
마르타 누나 고마워요~잉

2011년 8월 21일 일요일

나쁜 주민투표, 착한 투표거부

우리집에도 주민투표 안내문이 날아왔다. 내 참… 정말 주민투표라는 건 처음 접해 보는군.

지금까지 서울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투표율은 대략 20% 후반에서 30% 초반 정도였다고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찍을 후보가 있어서 찍으러 가는 것인데, 이번 주민투표는 무상급식 지지자들은 불참운동으로 아예 안 가고 오세훈이 지지세력들만 갈 것이기 때문에 투표율이 훨씬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법에서 정한 33.3%는 굉장히 높은 목표치가 된다. 보통의 보궐선거 투표율로 환산하면 60%를 훌쩍 넘겨야 되는 상황인 거다. 오세훈이의 패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고, 또 반드시 그리 되어야 한다. 이번 한판으로 역시 오세훈이는 강남 3구의 수석구청장일 뿐이었음이 시원하게 증명되기를 바란다.

이런 위기상황을 돌파해 보려고 오늘 오세훈이가 시장직을 걸겠다는 급박한 발표를 해버린 거다. 참으로 안좋은 선례를 남기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이제 걸핏하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자기 자리를 걸게 생겼으니 말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무시하고 서울시장은 서울시의회를 무시하고…

그나저나 딴나라 당내에서도 오세훈이의 사퇴 발표가 탐탁지 않은 듯한 분위기네.
일이 잘못 진행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 지들 모가지까지 도매금으로 날아가게 생겼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오세훈이에 대한 확실한 지지 액션이 없는 거고.

내 경우엔 지금까지 한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표했다.
공교롭게도 2002년 지방선거일이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신 친구 어머님의 상중이었기 때문에 충북 진천 시골동네에서 이명박이의 서울시장 당선을 울분으로 지켜봐야만 했었지.


며칠 전엔 한 서울시민이 주민소환 서명을 추진했더군.
설사 하늘이 무심하여 오세훈이가 이긴다 해도 필히 이 서명에 동참해서 끌어내리고 싶다.
참고로, 주민소환제는 선출직 공무원을 임기전 주민발의에 의해 해임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자치단체장의 경우 유권자의 10%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소환투표가 실시되며 유권자의 3분의 1이상이 투표하고 과반이 찬성하면 소환이 확정된다.

복지 때문에 나라가 거덜난다? 웃기지도 않네. 그럼 100조에 달하는 부자감세는 뭐냐??
“나쁜 투표! 착한 거부!”
간만에 착한 일 한번 하련다.
주어진 투표권을 거부함으로써 보다 더 큰 참정권을 성실히 행사하고자 함이다.

2011년 8월 19일 금요일

이랑과 고랑, 농종법과 견종법

초등 역사 5학년 2학기 1단원 중 ‘달라지는 경제생활과 신분질서’ 중단원, ‘농촌의 변화’ 소단원에 나오는 내용…

조선후기 논농사의 변화는 종래의 직파법에서 이앙법(모내기법)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 요점이고, 밭농사의 경우 고구마(감저)·감자로 대표되는 구황작물과 인삼·담배·채소 등 상품작물을 새로이 재배하여 소득이 증가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요컨대 논농사는 모내기법(이앙법), 밭농사는 골뿌림법(견종법)이 성행하였다는 것.

헌데, 아이들 왈 “고랑은 뭐고 이랑은 뭐에요?”라며 질문해 온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밭을 평편하게 고른 다음 두둑하게 쌓아올린 것이 이랑(높은 부분)이고, 이랑을 쌓기 위해 파낸 골이 고랑(낮은 혹은 깊은 부분)이다. 그리고 만종법은 밭이 평평한 상태에서 씨를 뿌리는 것을 말하고, 농종법·견종법은 밭에 파도 모양의 줄(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농사를 짓는 방법을 말하는데, 이랑에 심는 것이 농종법, 고랑에 재배하는 것이 견종법이다.

초등학생의 질문이지만, 중·고생들 중에도 모르는 녀석들이 많을 것이다. 하여 아래처럼 따로 정리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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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농사를 짓는 견종법(고랑에 씨를 뿌려 가꾸는 것)이 등장했다. 파종법은 기본적으로 작물의 생육환경을 고려하거나 노력을 절감하는 처지에서 선택되므로 어떤 파종법이 좋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고대에는 만종법(밭을 평평하게 고른뒤 그대로 씨를 흩어 뿌리는 방법)이 주로 사용되어 오다가 말과 소를 부려 밭갈이를 하는 쟁기 사용법이 발달되면서 농종법과 견종법이 발전해 왔다. 겨울 북서풍의 찬바람을 피하려면 바람 방향에 직각을 이루는 방향으로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견종법의 관점에서 봤을 때 농사를 지으려면 땅에 바로 씨를 뿌리는 게 아니라,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물이 잘 빠지고, 식물 뿌리가 숨을 쉴 수 있다. 그래서 땅을 파서 두둑하게 쌓는데,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좀 파인 곳이 있게 된다. 그런 일을 간다고 한다. 논을 갈다, 밭을 갈다 할 때의 갈다가 그 뜻이다.

‘고랑’은 두둑한 땅과 땅 사이에 길고 좁게 들어간 곳으로 이 고랑이 바뀌어 ‘골’이 되었다. 그 골이 산에 있으면 산골(산골짜기)이 되는 것이다. 고랑은 바람의 통로와 배수로 역할을 하며, 사람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이랑’은 씨앗을 넣거나 모종을 옮겨서 작물을 키우는 곳으로 햇볕을 잘 받아 작물의 성장이 빠르고, 비가 많이 와도 고랑으로 물이 빠져서 썩지 않게 해준다.
헌데, 국어 사전에는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 ‘이랑’이라고 풀이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고랑도 이랑될 날이 있다”, “이랑이 고랑되고 고랑이 이랑된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고랑과 이랑은 서로의 짝이 되는 상반된 의미의 단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두둑’은 밭과 밭 사이에 길을 내려고 골을 파서 흙으로 쌓아 올린 두두룩한 바닥을 뜻한다. 이랑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지만 이랑보다 좀더 폭이 넓은 편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두렁’은 좀 다르다. 고랑이나 이랑, 두둑은 논이나 밭 안에 있지만, 두렁은 논이나 밭의 가장자리로 작게 쌓은 둑이나 언덕을 가리킨다. 논두렁, 밭두렁 할 때 그 두렁이다.

밭에 고랑을 파고 둔덕(이랑)을 만들어 물이 잘 빠지게 만든 뒤 이랑에 모종을 심는 것을 농종법이라고 한다.
이랑에서 자라는 모종의 뿌리는 고랑에 스며 있는 물기를 빨아들인다.
지나친 습기를 싫어하는 콩·팥·수수·옥수수·기장·고추 등 여름 작물은 이 농법에 잘 맞는데, 이러한 종류의 작물을 이른 봄에 심었다가 거두고 나서 늦여름에 김장에 쓸 무나 배추, 혹은 보리를 심는다.
경우에 따라 밭농사는 1년에 이모작 또는 삼모작까지 가능하다.
농종법의 이점은  배수처리 및 채광과 통풍이 좋고, 이랑 사이의 골에 난 잡초를 제거하는 노력도 적게 든다는 것이다.

고랑에 작물을 심으면 비가 계속내리는 경우 작물이 섞여버린다. 고랑에 물이 차지 않게 관심을 많이 기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또 고랑은  햇볓을 가리는 단점이 있다.
이런 단점에도 고랑에 작물을 재배한 이유는 제때 원하는 만큼 물을 주기가 어려워 물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말라 죽는 것보다는 수확량이 적어도 고랑에 심는게 더 나아서 이랑보다는 고랑에 많이 심었다. 우리 나라의 파종양식은 농종법으로 관행되어 오다가 17~18세기에 수확이 많은 견종법으로 발전했으나, 모든 밭작물 혹은 같은 작물이라도 어느 곳에서나 다 견종법을 쓰는 것은 아니다.

견종법을 대표적으로 쓰고 있는 작물은 보리·밀·호밀·귀리 등 겨울작물인 맥류(麥類)들이다. 겨울작물은 가을에 파종하며, 우기가 닥치기 전인 6월에 수확하게 되므로 봄에 파종하여 가을에 거두는 여름작물과 같이 우기의 배수처리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과습(過濕)을 꺼리는 여름작물은 이랑 위에 파종해야 하나, 생육기가 겨울과 봄 등 건조기에 해당하는 겨울작물은 과습의 우려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겨울철 건조한 혹한기에 작물이 얼어 죽거나 말라 죽을 염려가 있어 이랑 위보다 방한(防寒)이나 보습(保濕) 효과가 있는 견종법을 써야 한다.

이로 보아 보리는 농종법으로 재배되어 오다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견종법으로 파종법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겨울 보리는 밭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데 높은 이랑보다는 낮은 고랑에 있어야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높은 부분보다는 낮은 골에 있어야 습도가 높아 가뭄에도 잘 버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리의 경우라도 파종기나 발아기의 과습이 우려되는 논보리 재배의 경우에는 그 이랑 위에 다시 작은 이랑을 지어 견종법을 쓰게 되므로, 이 경우에는 배수를 고려한 농종법과 방한과 보습을 고려한 견종법을 다 같이 갖춘 절충식 파종방식이 된다.

또, 농종법을 쓰는 여름작물이라도 올조[早生粟]나 올기장[早生黍]과 같이 건조한 이른봄에 파종할 경우, 가뭄을 잘 타는 지대나 모래질 땅에서는 여름철 우기의 과습이나 배수처리보다는 발아기의 토양 수분이 더 생산의 제한요소가 되므로, 《임원경제십육지 林園經濟十六志》 본리지(本利志)에서 지적한 대로 여름작물이라도 이랑 사이에 파종하는 견종법을 써야 한다.
보리의 경우, 견종법으로의 발전은 농종법으로 파종하던 시대보다 농업 경영상 보다 많은 수량을 올렸다는 면에서 이 파종방식의 역사적·농업적 의미는 크다.

“고랑도 이랑될 날이 있다”에서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이 연상된다. 성경 말씀처럼 앞선 자가 뒷 서고 뒷선 자가 앞설 수 있다.
고랑이 오목한 부분이라면, 이랑은 볼록한 부분이므로 고랑과 이랑은 서로 맞서는 그러나 상생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랑이 고랑되고 고랑이 이랑된다.

2011년 8월 14일 일요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정부와 대기업의 로우함

사상 최악의 보안사고로 요즘 네이트에 접속하면 사과문부터 팝업으로 뜬다.


이번에 유출된 3,500만개의 개인정보는 수치상으로 전체 누리꾼의 95% 수준.
대부분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와 싸이월드 가입자들이다.
네이트나 싸이월드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개인 PC에 알집이 설치됐다면 얼마든지 ‘좀비PC’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PC들을 ‘좀비 PC로’ 만드는 데 이용된 것이 이스트소프트의 공개용 알집 업데이트 프로그램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SK컴즈의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담당한 곳은 세계적인 백신 업체인 시만텍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중국에 할당된 IP로 유출된 개인정보는 ID, 암호화된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성명, 생년월일, 성별,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주소, 닉네임 등이다.
때문에 네이트나 싸이월드와 동일한 패스워드를 사용하는 모든 사이트의 패스워드를 변경해야만 제2, 제3의 추가 피해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
다행히도 몇달전부터 알약을 삭제하고 V3라이트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부턴 압축프로그램도 알집이 아닌 V3집을 사용해야할 듯.
어찌됐든 이스트소프트의 알툴즈 제품들은 한동안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대개 국민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특히 네이버는 애초 기업용 알툴즈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설픈 보안의식과 헤픈 도덕성이 정말 “꽝~”. 역시 네이버스럽다.
내 정보가 중국 포탈에 돌아다니며 거래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 실제로 바이두
(baidu.com)에서 ‘韓國實名 576’라고 검색하니까 rar로 압축된 파일들이 뜨는 걸 확인했는데, 한국인의 인적정보는 중국인들이 한국 게임 사이트나 한류 스타의 팬카페 등에 가입할 때, 또는 피싱 사이트 등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정부 들어 유난히 민심진압용 전기통신법이 활개치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 자국 국민에 대한 감시와 인터넷 옥죄기에는 혈안인 주제에 타국의 해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이눔의 정부는 도대체 누굴 위해 존재하는 것이냐.

2011년 8월 10일 수요일

[영화] 최종병기 활

중3 아이들 몇몇과 오전에 영화 한편 관람. 조조는 근 20년만에 처음이군.
최종병기 활(Final Weapon Bow). 오늘이 개봉일이다. 10시 상영작이라 조조할인으로 5천원.
악당에게 납치당한 딸을 구출해내는 용감무쌍한 아빠라든가, 비명해 간 부모의 유언을 지켜 동생을 보호하는 큰형·큰오빠의 얘기는 미국 영화에 흔히 나오는 뻔한 줄거리지만, 17세기 초중반 조선이라는 배경을 입히고 나니 새롭게 느껴지더군.

늘 그렇듯이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다면 더욱 흥미있게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부왕 선조로부터 세자로 봉해진 광해군은 무난하게 분조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중종의 서자였던 선조는 32살 연하의 인목왕후와 재혼하여 뒤늦게 얻은 늦둥이 적자 영창대군으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하는 것으로 방계 승통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임란 후 서인은 국정에서 배제되고 동인이 정권을 잡게 되는데, 동인에게 해꼬지했던 서인들을 처벌하는 문제로 온건파 남인(유성룡)과 강경파 북인(이산해)으로 대립한다.
먼저 집권했던 서인과 남인은 왜란의 발발과 초반 패배에 책임이 있던 반면, 상대적으로 북인은 의병활동으로 공을 세워 명분을 가져하게 된다. 이처럼 북인은 임란 중의 정책 실패와 왜군과의 화의가 정유재란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들어 유성룡 중심의 남인정권을 퇴진시키고 집권하지만, 선조의 후계 문제로 인하여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정인홍)과 영창대군을 받드는 소북(유연경)으로 갈라선다.
우여곡절 끝에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대북이 중심이 된 북인정권은 지지부진하던 양전을 실시하고,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전후 복구사업을 주도해간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 대륙에서는 무리한 조선 출병으로 국력이 쇠퇴한 명과 그 틈을 타 부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건국한 여진족(만주족)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후금의 공세에 고전하던 명은 조선에 원군을 요청해온다. 이에 조선은 명의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 후금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부담과, 임란 때 조선에 출병했던 명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 사이에서 곤란에 빠진다. 결국 광해군은 새롭게 성장하는 후금과 적대 관계를 가지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강홍립으로 하여금 출병한 후 정세를 보아 향배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조·명 연합군이 후금군에 패하자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와 같이 광해군은 쇠퇴해가는 명과 강성해지는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실리외교 정책을 전개하여 후금의 외침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리와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서인들은 이를 명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하고, 여기에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광해군의 도덕성 문제까지 얹어,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북인정권을 몰아내었다.
이쯤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아마도 광해군을 지지했던 대북파였을 아버지가 서인 세력에게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하는 처참한 상황을 목격한 남이(박해일 분)와 자인(문채원 분) 오누이는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아버지의 절친(이경영 분)에게 서러운 삶을 의탁하게 된다.
다시 역사로 돌아가서…

1623년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여 1627년 호란을 초래하고 만다. 이때에는 형제관계의 화의를 맺고 돌아갔지만, 이후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꾼 청태종은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1636년 재차 침입해 왔다.
여기가 바로 ‘최종병기 활’의 두번째 시대 배경이다.

역적의 자손이기에 문과나 무과를 통한 입신양명은 꿈도 꾸지 못하는 남이는 무공도 보잘 것 없고 사냥이나 다니면서 세월을 죽이고 있다. 남이의 유일한 삶의 목적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하나뿐인 누이인 자인을 지켜내는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하필이면 혼례일에 호란을 당하여 청으로 끌려가는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청나라 정예 나루들을 하나씩 처치해 가면서 운명의 대결을 시작한다. 남이의 활솜씨를 알아챈 쥬신타(류승룡 분)는 조카인 왕자를 지키기 위해 남이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신궁… 주몽 동명성왕, 궁복 장보고, 그리고 ‘최종병기 활’의 남이… ‘반지의 제왕’의 활쏘는 요정 레골라스 그린리프처럼 허황되지도 않다. ‘나니아 연대기’의 수잔 여왕처럼 어설프지도 않다. ‘원티드’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구사한 곡사와도 다르다. 남이의 활은 휘어 날아가 상대방에게 예측 불가능한 일격이 되지만, 죽이기 위한 활이 아니다.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써 여동생의 삶을 지켜낸 남이는 안도한 얼굴이다. 오빠의 헌식적인 돌봄으로 삶의 기회를 얻게 된 자인은 역경이 없지는 않겠으나 오빠 몫까지 열심히 살아나갈 것이다.

“두려움은 그저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멋진 대사도 나온다. 백두산 호랑이도 등장한다.

남이와 쥬신타의 긴장감있는 대결과 만주어나 활에 대한 나름의 고증, 뜨거운 가족애 모두 볼 만한 요소지만 단 하나,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지배층의 작태에는 신물이 난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광해군의 등거리 외교를 폐기시켜 버린 당시 조선의 서인 집권층이 자초한 국난이었으며, 대륙의 침입에 분연히 맞선 것은 임금도 국가도 아닌 일반 백성들이었다.


영화 관람 후…
아이들에게 극장의 조조할인은 1학기 때 배운 ‘시간에 따른 가격변동’에 해당한다는 것과, 1575년 동서분당 이후 조선의 상황 및 두 차례의 전란에 대해 다시한번 얘기해 주었다. 중국과 일본의 동북공정과 독도 침탈에 대한 야욕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이 때, 대한민국 중·고생들의 일람을 권하고 싶은 영화다.

2011년 8월 8일 월요일

반바지 출근

한 달에 절반 정도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비가 많이 오는 요며칠 사이엔 반바지에 검정 고무신발 차림으로 출근.
넘치는 빗물로 구두와 양말, 정장바지 아랫단까지 흠뻑 적셔지고 나서야 버스에 오를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인데…
아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으로 대략 두 패로 나누어진다.
여학생들은 “패션이 그게 뭐냐? 후지다, 구리다!”며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재미있다는 표정.
반면 남학생 녀석들은 선생님이 자기들과 같이 반바지를 입었다는 것에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는 거 같다.
앞으로 여름철에는 언제든 폭우가 쏟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생활이 편해진다. 서랍 속엔 새 양말과 우산을 상비해 둔 지 오래. 하여간 비가 좀 잦아드는 상황이 됐다 싶을 때까지는 이런 차림으로 출근을 해야 할듯…

2011년 8월 1일 월요일

내년을 위한 강원도 휴가 메모

이번 여름엔 지리산에 가보고 싶었는데, 여론에 밀려 2박3일 간의 강원도 여행을 마치고 어제 복귀. 순전히 개인적으로 숙소나 해수욕장 등 다음 여행을 위한 기록 차원에서 몇가지 적어 둔다.

031-635-7190, 단골민박. 1박에 큰방은 5만원 작은방은 4만원… 우리가 묶었던 숙소다. 강원도 여행포탈(http://kangwondo.net/) 사이트를 통해 찾았는데, 시설이 깔끔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2층을 거의 독채로 쓰다시피 했고, 비교적 넓은 시멘트 공구리 마당에 지붕이 있는 평상이 있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밥해 먹기 안성맞춤.
숙소에서 나와 7번 국도를 건너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대포항에서 회를 맛볼 수 있고, 우측으로 솔찮이 내려가면 물치항이 나온다. 군복무 시절 작개지역이었기 때문에 모두 익숙한 곳들.


짐을 풀어놓고 햇반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다음 가장 가까운 속초 해수욕장으로 향함.
헐~ 시설 이용 요금이 장난이 아니다. 파라솔 대여에 1만3천원, 데크가 있는 파라솔은 무려 3만원.
파랑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되어 해수욕장으로 이용되는 곳이 사빈(모래사장)인데, 송림도 적고 몇년 전보다 백사장의 폭이 조금은 줄어든 느낌. 바닷물 속에서도 자갈이 많이 밟히고, 해안 침식 때문인지 바닥이 갑자기 낮아지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기에는 상당한 주의가 요구됨. 때문에 안전띠도 지나치게 많이 해변 쪽으로 가까이 설치돼 있다.
속초 해수욕장은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지 않음. 나 역시 이후부터는 굿바이~!

해수욕을 마치고 6시 무렵 들른 대포 어시장에서 흥정, 여름 한철 대박 시즌이라고는 하지만 물가가 너무 비싸더군. 결국 3만원에 우럭과 광어, 오징어, 멍게를 사옴. 숙소에서 풀어보니 우럭과 광어가 1팩씩인데 양이 생각보다 많이 적고, 오징어만 2팩에 멍게는 반토막… 헐~ 완전히 당했다. 이것이 강원도의 힘? 우리가 지정한 횟감에 사시미 칼질하는 걸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필시 작은 사이즈 놈들로 바꿔치기 했으리라. 미리 준비해 간 삼겹살이 아니었다면 안주가 한참 모자랄 뻔 했지.


둘째날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북쪽 화진포로 고고씽.
역시, 현명한 선택. 운좋게도 제 1선 사구에 그늘막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냄.
돌아오는 길에 속초수산물시장에서 조개와 새우 구입, 숙소 마당에서 숯불에 조개구이 파티.
바지락은 화진포에서 우리가 직접 발꼬락으로 잡은 조개들이다. 이놈들 중 일부는 모래가 덜 빠져 지금지금 거렸지만, 맛은 일품.
바다향 가득한 해걷이바람과 청량한 소주와 지글지글 익어가는 가리비와 추억 속의 이문세 노래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멀리 깜깜한 바다를 비춰 보이는 오징어잡이 배와 불안한 현재와 그보다는 낙관적인 미래와 가슴 속 대화가 함께 어우러진 흐뭇한 밤시간…


셋째날, 상경하기 전에 잠시 들른 아야진 해수욕장.
북쪽 끄트머리 암석 해안 쪽에서 헤엄쳐 다니는 7~8㎝ 졸복 몇 놈을 건드렸더니, 빵빵하게 바람을 넣은 채 수면 위로 하얀 배를 드러내고 죽은 체를 하더군.


양양 쪽으로 내려가다가 ‘장산리’ 이정표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영광정’이라고 유명한 메밀국수 집이 나옴.
혹시, 원조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까. 막국수와 만두 맛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반면, 옥수수로 만들었다는 농주 맛은 좋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출발. 중부지방에 호우주의보와 호우경보가 발령된 상황. 한계령 휴게소에서 잠시 화장실에 들른 것을 빼면 44번 국도를 5시간 10분만에 주파하여 집에 도착했으니, 선방한 셈.
이로써 또 한번의 짧은 여름날이 저물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