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1일 화요일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의 소총


군대 담론.... 얼마 전 EBS 인기 국어강사 장희민씨의 동영상 강의 때 나온 발언으로 또한번 크게 이슈가 됐었다.
젊은층의 언어변화를 설명하면서 남자는 주로 비표준형을 만들고, 여자들은 주로 표준형을 만든다면서 곁들인 말이....

“남자들은 폭력적이고 좋지 않아요. 남자들은 군대 갔다왔다고 좋아하죠. 자기 군대 갔다왔다고 뭐 해달라고 맨날 떼쓰잖아요. 그걸 알아야죠. 군대 가서 뭐 배우고 와요. 죽이는 거 배워오죠.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 놓으면 걔넨 죽이는 거 배워오잖아요. 뭘 잘했다는 거죠. 도대체가? 자, 뭘 지키겠다는 거죠. 죽이면서. 그냥 처음부터 그런 거 안 배웠으면 세상은 평화로와요........ 너무 남존여비가 거꾸로 가고 있죠.”

였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다른 내용은 다 집어치우고,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입장에서 보면 말인즉슨 군대에서 죽이는 기술을 배운다는 것 자체는 맞는 말이다. 그게 군대라고 하는 조직의 존재 이유니까. 007식으로 얘기하자면 일종의 ‘살인면허’ 같은 거 아닌가.
비근한 예로 총검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구령에 따라 열심히 “찔러총”을 해대고 있는 나에게 교관이 그러더라구. 그냥 단순히 앞으로만 찔러대서는 타격을 주지 못한다. 시계방향으로 약간 돌리듯이 하면서 찔러야 깊숙하게 박히면서 뽀다구도 난다구.... 헐~~

감히 ‘군대’ 라는 성역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나이브한 발상의 그 강사가 비난받아야 한다면, 국기에 대한 경례 하나 제대로 못하는 영부인에게도 마찬가지의 비난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대통령, 국회의원 등등 소위 파워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자들은 병력이 모자란다고 떠들어 대면서 정작 본인과 자식들은 왜 그 ‘성역’에 입성하지 않는가. 고매하게도 사람 죽이는 기술 배우기를 거부해서인가. 군복입고 훈장차고 썬글라스 쓰고 LPG 가스통 들고 위협적으로 시위하는 투사 아저씨들.... 왜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나.
문제는 역시나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문제로 환원된다.


‘소총’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이 M16, K2 인데.... 찾아보니 세계 각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개인화기를 자체 개발해 놓고 있더군. 지면이 좁은 관계로 미국, 러시아, 중국, 이란, 이라크, 북한의 소총 몇자루만 소개해 본다.


미국 소총




러시아 소총




중국 소총




이란 소총




이라크 소총




북한 소총



북한의 소총은 크게 PPSH계열과 AK계열로 분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사용된 ‘PPSH-41’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주요 개인화기로 AK계열 출현 전까지 사용됐다. 한국전쟁 당시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개인화기로 사용한 덕분에 6·25 배경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따발총’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PPSH-41 후속 모델로 생산된 ‘PPSH-43’은 소련에서 개발돼 60년대 북한군이 주로 사용했다. 특히 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사건 당시 침투 공비들이 휴대했다. 총열집에 7개의 구멍을 뚫어 공기 냉각이 편리하도록 설계됐는데 분당 650발의 사격이 가능하고 탄알을 장전했을 때 무게는 3.93㎏이다.

‘58식 자동보총’이 도입되면서 북한의 주력 소총은 PPSH계열에서 AK(Automat Kalanishkov)계열로 전환된다. 북한군은 소련에서 개발된 AK-47 소총을 도입해 주력화기로 제작했는데 58년과 68년에 생산돼 각각 ‘58식·68식 자동보총’으로 명명됐다.

총 몸체 왼쪽에 숫자와 한글로 58식·68식으로 각각 표기돼 있고 조정간에는 ‘단·련’이 한글로 표기돼 있다. 북한은 ‘소총’이란 용어 대신 보병이 사용한다 해서 ‘보총’이라는 용어를 붙였다.

AK소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소련 침공을 계기로 독일군의 우수한 개인화기였던 MP-40을 제압할 수 있는 돌격용 소총을 연구하던 소련 전차부대 부사관 칼라니쉬코브가 설계, 제작했다.

소련의 기존 주력화기였던 시모노브소총(10발 내부장착 탄창)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20·30발 분리형 탄창이 장착됐다. 조작방법이 간단한 데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장이 없는 장점 덕분에 47년 최초로 개발된 이후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던 공산권 국가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걸쳐 확산됐다.

특히 일교차가 심하고 모래 바람이 많은 아랍권을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사용됐다. 현재 우리 우방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AK소총의 변종 형식을 취한 자체 개발 총기가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7.62×39㎜ 탄을 사용하는 58·68식과 달리 5.45×39㎜ 탄을 사용하는 AK-74(북한의 경우 88식 자동보총)가 제작돼 신형 대체 총기로 확산되고 있다. AK소총은 아카보소총·돌격소총·칼라니쉬코브 소총·7.62㎜ 소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2010년 8월 28일 토요일

스펙과 스팩의 차이


최근 스펙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스펙(Spec)과 스팩(SPAC)은 전혀 다른 의미다.
한번 알아보자. (M25 vol.150 p.6 참조)


스펙(Spec, Specification)
본래 제품설명서나 제품의 구체적인 사양·제원을 뜻하는 말이지만 최근엔 그 사람의 학력이나 경력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복수전공을 ‘보험’ 처럼 해두며,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학력과 학점, 어학시험 점수, 교내외 활동 이력, 인턴십 이력 등이 스펙에 포함된다. ‘맨땅에 헤딩’ 하는 격으로 우르르 고시에 몰려들고, 심지어 자원봉사도 스펙쌓기의 도구가 된다. 중앙대로 대표되는 대학 현장은 취업양성소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직장인들에게는 더하여 회사에서의 담당 업무와 실적 등이 포함된다. 최근 자신의 스펙을 높이기 위한 샐러던트(공부하는 직장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연봉이나 근무 환경 등이 조금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한 사람, 지금까지 일했던 곳이 아닌 새로운 분야로 이직하기 위한 사람, 현재의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한 사람 등 샐러던트가 되는 이유도 다양하다.

현대판 음서제도의 화려한 부활.... 그나마 상승의 기회가 되어주던 고시마저 관료조직의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스펙으로 무장한 상류층에게 다 내어주게 생겼다. 더하여 청년실업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고졸 이하나 대학 중퇴 등 ‘비대졸자’는 아예 관심 영역 밖으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이들에게 대학생들의 스펙 경쟁은 화려한 사치일 뿐이다.

“이게 아닌데 내 맘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폭주 기관차에서 뛰어내릴 용기도 비젼도 없다. 누적적이며 불가역적인 스펙의 차이는 곧 계급의 격차로 확대되어 전 생애를 통해 점차 벌어질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스팩(SPAC,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스팩은 한마디로 기업인수목적회사, 즉 기업 인수·합병(M&A)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명목상의 회사다. 공모를 통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상장시킨 뒤 쓸 만한 비상장기업을 인수 합병해 수익을 나눠갖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명목상 회사)다. 따라서 M&A성과 외에는 뚜렷한 상승동력이 없는 종목이다.

만약 기업 합병에 실패하면 스팩은 청산되고 투자자들은 남아 있는 돈을 돌려받는다. 하지만 상장 초기 투자과열 양상까지 빚어졌던 스팩의 인기가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공모가를 하회하는 종목이 늘고, 공모주 청약에선 미달사태도 나타났다. 아예 공모일정을 미루는 스팩까지 나오고 있어 ‘백조에서 미운 오리새끼’가 되는 형국이다. 증권사들이 내놓는 스팩들이 대체로 엇비슷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국내에 새로 도입된 스팩이 최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도 투자심리를 낮추고 있다고. 적정가격의 성장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은 작업인데다 그 결정이 투자자들에게도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그래서 무작정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싶다면 경영진의 투자 경력과 과거 실적을 꼼꼼히 살펴 투자해야 한다. 간접투자인 스팩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단다.
(뭔 소린지 모르겠네.)

 

2010년 8월 23일 월요일

전세계 여자들 가방 속 공개


전세계 여자들 가방 속엔 뭐가 들었나?
그렇다고 몰래 뒤져볼 수도 없는 노릇인데....
뭇 남성들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기꺼이 공개해 주신 세계 곳곳의 여성 핸드백 물건들.. 두둥~
역시 남자들보다 훨씬 다양하고 가짓수도 많네.
화장품, 뷰러, 향수, 거울, 가위, 파우치, 핸드크림, 립스틱, 악세사리, 선글라스, 장갑, 핸드폰, MP3, 디카, 지갑, 책, 약통, 담배, 노트, 필기구, 초콜렛, 물통, 패션소품, 인형, 우산.... 조금은 아니무스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여성도 보이고.... 그리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 없는 물건들 몇가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여간 그녀가 평소 뭘 갖고 다니는지, 좋아하는 물건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데이트 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테지.

[드라마] 전우

한국전쟁 60주년 KBS 특별기획 드라마 《戰友》
김인규 지시로 제작됐다고 하길래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그제 어제 최종회를 봤더니 그런대로 재미가 있더군.
선임하사 최수종 하나 남겨놓고 등장인물들을 싸그리 죽여버린 것도 그렇고, 전투 씬에서 턱끈을 맨 것도 그렇고 나름대로 리얼리티를 확보하려고 고심한 흔적도 보이고.. 《로드 넘버원》에서는 총알이 빗발치는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도 소지섭은 끝까지 턱끈을 하지 않더군. 대개의 한국 전쟁영화는 다 그렇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내가 꼬마 적에 봤던 드라마 《전우》는 한 소대장이 주인공이었는데 이 사람, 나중에 식물인간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거 같기도 하고.. 장항선씨가 출연했던 거 같기도 하고...... 윗동네 아랫동네 편을 갈라 골목을 누비면서 하이바 쓰고 전쟁놀이에 흠뻑 빠졌던 어린 시절이었지.
수구 반공 드라마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하여간 간만에 울컥 + 뭉클한 느낌이 전해온 드라마였네. 과연 영상 콘텐츠의 파워는 무섭군.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한 이유가 다 이런 건가 보네.

그리고 무엇보다 김장훈이 부른 엔딩 타이틀곡 ‘친구여’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가사말이 한동안 흥얼거리게 생겼더군.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요 몇년 사이 거짓부렁과 말바꾸기로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해 온 군에 대한 이미지가 잘된 드라마 한편으로 한방에 희석될 수는 없겠지.

2010년 8월 18일 수요일

혈안



어제 4대강과 관련한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불방이 되고 말더군.
그렇게 거리낌없고 정당하고 당당하다면, 대운하를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조인트 까인 사장과 이사회 압력으로 불방을 만드는 것인지....
이같은 공안정국, 철권통치의 국가를 뉴스위크 또라이 시키들은 턱하니 ‘세계 베스트 국가’ 15위에 올려놨네. 더더구나 이명박이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 10인’ 중에 하나란다. 헐~~ 한국 내에서도 10위권은 어림도 없는 콧방귀인데.... 짜장 어이 없군. 안팎으로 꼴통 천국이네.

당정청은 작금의 상황을 ‘홍보 부족’ 때문으로 결론지었다. 홍보만 잘 되(었다)면 아무 문제 없(었)다는 단순무식한 논리. 그 성격상 보수 성향이 짙은 종교인, 교수 집단 등의 시국선언과 반발이 거세다는 것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더더구나 요즘같은 압제시대에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가져야 가능한 일이니 더욱 그렇다. 천주교, 불교, 원불교, 소수이긴 하지만 개신교도 동참하고 있다.

어떤 목적이 설사 바람직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또는 수단이 정당하지 못할 때 목적의 가치성이 결코 수단의 정당성을 절대적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하물며 목적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경우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아름다운 강은 원래 모습을 보전하는 것이 곧 자연보호이며, 국토사랑이고, 후대에 대한 배려이다.

“모든 땅과 물은 나의 옛 몸이고, 모든 불과 바람은 나의 본체이다.”(법망경)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은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에제키엘 47,9)

아래는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수도자 5005인 선언문이다.
지면 관계로 서울대교구 소속 분들만 소개한다. 내게는 낯익은 분들이 상당수다.
(경향신문 2010.5.12.수 9면 전면광고에서 인용)





2010년 8월 5일 목요일

몽염 열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모두 130권인데, 그 가운데 서(書) 8권과 표(表) 10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인물 이야기이다. 12본기(本紀)는 제왕들의 이야기이며, 30세가(世家)는 제후·신하들의 이야기이고, 70열전(列傳)은 ‘정의를 북돋우고 재주가 뛰어나서 때를 잃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열전은 선과 악, 거짓과 진실이 서로 얽혀 엮어진 인간 드라마이며, 사마천의 세계관이자 역사관이기도 하다.
이릉사건으로 궁형을 당한 사마천이 그 치욕을 이기고 살아 남는 까닭을 이 문장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라 한다.
본기의 ‘기’와 열전의 ‘전’을 따서 이름을 붙인 ‘기전체’라는 역사 서술 형식의 효시가 되었다. 참으로 매력있는 잘 읽히는 책이다.

사기 열전 중 4대강 사업을 몰아붙이는 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 있어 발췌하여 옮겨 적는다. 제 28권 「몽염 열전」이다.

몽염(蒙恬)은 그 조상이 제나라 사람이다. 시황 26년에 몽염은 집안에서 대대로 장군을 지낸 관계로 진나라 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고 그 공으로 내사(內史)가 되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몽염에게 명하여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북쪽으로 가서 융적(戎狄)을 내어쫓고, 하남을 점령하여 장성(長城)을 쌓게 했다. 지형에 따라 험난한 곳을 이용하여 성채를 쌓았는데, 임조(临洮)에서 시작하여 요동(辽东)에 이르기까지 연장이 일만여리나 되었다. 시황제는 몽씨 일족을 매우 존중하고 총애했으며, 그들을 신임하고 현명하게 여겼다.

시황제가 천하를 순행하려고 했는데, 구원에서 길에 올라 곧바로 감천까지 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몽염을 시켜 구원에서 감천까지 길을 뚫게 했다. 몽염은 산을 깍아내리고 골짜기를 메워 1,800리를 뚫었지만, 길은 완성되지 않았다. 시황 37년 겨울에 황제가 길을 떠나 회계산에 노닐다가, 바닷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 낭야(琅邪)로 향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병이 나서, 사구에서 붕어했다. 그러나 비밀에 부쳤으므로 다른 신하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때 좌승상 이사(李斯)와 공자 호해(胡亥), 중거부령 조고(趙高)가 늘 황제의 곁을 따라다녔다. 조고는 본래부터 호해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호해를 황제로 세우려 하였다. 그래서 승상 이사, 공자 호해와 음모하고는, 호해를 세워서 태자로 삼았다. 호해는 태자가 되자 공자 부소와 몽염에게 사자를 보내어서 그들에게 죄를 씌워 죽음을 내렸다.

몽염이 길게 한숨쉬고 말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한참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나의 죄는 참으로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공사를 일으켜 요동에 이르기까지 장성을 만여리나 쌓았으니, 그 가운데 어찌 지맥을 끊어놓지 않았겠는가? 이게 바로 나의 죄이다.”

그리고는 약을 삼키고 죽었다.

요컨대 진시황의 충복으로 만리장성 축조를 진두지휘한 장군 몽염이 2세 황제 호해에게 죽임을 당함에 1만여리 장성을 쌓는 동안 지맥을 끊어놓은 자신의 죄과가 크다고 통탄했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사마천은 태사공의 입을 빌어 몽염의 비극적 말로의 본질이 그 반시대적ㆍ반시민적 행보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북쪽 변경지방에 갔다가 직도(直道)를 통해 돌아왔다.
길을 가면서 몽염이 진나라를 위해 쌓은 만리장성의 요새를 보니, 산을 깍아내리고 골짜기를 메워 직도를 통하게 했다. 참으로 백성들의 노고를 가볍게 여긴 짓이다.
진나라가 제후들을 멸망시킨 초기에는 천하의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못했고, 상처를 입은 자들도 아직 낫지 않았다. 그런데 몽염은 명장이면서도 이러한 때를 당해 강력히 간언하여 말리지 못했다. 백성의 궁핍을 구제하고 노인과 고아를 부양하여, 모든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려고 힘쓰지 않았다. 시황제의 야심에 추종하여 커다란 공사를 일으켰다. 그들 형제(몽염·몽의)가 사형당한 것도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어찌 지맥 끊은 것에다 죄를 돌리려 하는가?

몽염의 망상은 22세기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작금의 한반도 남쪽에 재현되고 있다.
강물은 흐르는 것이 자연의 순리일진대, 오늘도 쇠 귀에 경 읽은 기분이다. 역사를 뒤돌아보는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일당들에게는 배워지는 것이 없겠으니 말이다.